[유튜브-태영호TV][북핵외교심층분석] 김경희의 부활-제2회 장성택 숙청 비화

‘김경희의 부활’ 제2회 장성택 숙청 비화

유튜브 [태영호TV] 바로보기

 

[내용 전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시간에 이어 ‘김경희의 부활’ 제2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회에서는 ‘장성택 숙청의 비화’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제가 김경희의 부활에 대해 얘기하면서 뜬금없이 2013년에 있은 장성택 숙청얘기는 왜 나오느냐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시간에 다시 6년 전으로 잠깐 거슬러 올라가면서 김정은의 지난 6년간 북한 내부 정치흐름을 다시 들여다보아야 향후 한반도의 정세 흐름이 보일 것입니다.

 

필자가 2016년 여름 한국으로 망명하자 한국의 대북관계자들은 물론 서울에 있는 외교관들까지도 제일 먼저 물어보는 질문들은 ‘장성택 숙청을 누가 주도했는가?’‘김경희가 자기 남편인 장성택의 처형에 동의 했는가?’ ‘김경희는 어떻게 되었는가?’‘2009년까지 북한 상류층도 몰랐고 권력기반이 약했던 김정은이 집권 후 1년 만에 어떻게 자기 오른 팔과 같은 고모부세력을 쳐낼 수 있었는가?’‘김정은 뒤에 혹시 외부세계에서 모르는 그 어떤 실세가 있지 않는가?’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사실 북한을 수십 년 동안 들여다보면서 연구사업을 해온 전문가들도 장성택을, 그것도 그렇게 짧은 기간에 숙청한다는 사실이 정상적인 사고력으로는 납득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나에게 물어본 그러한 질문들은 내가 자신에게 수십 번 했던 질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심각한 마지막 질문 앞에 제가 말문이 막혔습니다.

 

바로 ‘장성택은 정말 처형되었는가?’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이 질문을 받고 저는 한참 생각했습니다. 이 질문에 당시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장성택 일당으로 분류되는 중앙당 행정부와 그 산하 54부에서 공개적으로 총살된 사람은 부부장과 과장급 11명입니다.

11명 명단을 당적으로 공개했고 그들을 모든 도서와 사진에서 삭제 했습니다. 그 나머지 일당과 가족 수천 명이 지방으로 추방되었습니다.

 

그러나 장성택이 처형되는 것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제가 북한에 들어갔던 2014년 2월 제 친구들 중 일부는 장성택이 처형되지 않았고 감금상태에 있다고 했습니다.

 

당시 북한은 당내적으로 ‘장성택여독청산사업’을 3년 동안 벌린다고 했습니다. 모든 간부들이 장성택이나 그 라인인 행정부, 54부와 있었던 일들을 자필로 빠짐없이 써서 바치는 사업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고위급 간부들 속에서 도는 말은 장성택여독청산이 끝날 때까지는 장성택을 살려둔다는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쉬쉬 하면서 돌아가는 소문일 뿐 이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답변하니 이어지는 질문이 그럼 장성택이 아직도 살아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 물음에 제가 확고히 장성택은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내부에서 돌아가는 정황을 보면 장성택은 죽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에서 간부들이 숙청될 때 여러 등급이 있지만 총살과 같이 물리적으로 죽었을 때에는 모든 출판물들과 기록들에서까지 삭제됩니다.

 

장성택과 같이 수십 년 동안 북한 언론매체에 나와 있는 사람을 다 지워버린다는 것은 전(全)당, 전(全)국가적으로 해야 하는 사업인데 결국 2015년까지 북한은 이 사업을 마무리 했습니다.

 

이미 언론을 통해 장성택이 처형되었다고 공개 했으니 다시 번복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북한에서 장성택여독청산 작업이 2016년 초 평양시 교외 대성구역에 건설했던 민속공원을 다 부셔버림으로써 마무리 되었으며 이때 장성택도 내부적으로 처형하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추측일 뿐입니다.

 

그러면 장성택 숙청은 누가 주도 했을까요?

 

물론 언론에는 김정은이 백두산에 측근들을 데리고 올라가 장성택 숙청을 토의하고 일사천리로 했다고 보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나에게도 그처럼 큰 힘을 가졌던 장성택을 순간에 쳐내고 어제까지만 해도 장성택과 술을 마시던 간부들이 하루아침에 장성택성토장에 나올 수 있을까요?

 

정말 김정은에 충성해서 아니면 그 누가 뒤에서 총괄 지휘 했을까요?

 

그런데 저는 이번 김경희의 등장을 통해 장성택 일당의 숙청은 김정은이 발기하고 김경희가 승인하고 간부들을 동원해 주었으며 구체적인 작전지휘는 김정은이 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조카와 고모의 연합작전이었다고 볼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김경희가 자기 남편을 잘라 버리기로 독한 마음을 먹을 수 있었을까요?

 

저의 자서전 <3층 서기실의 암호> 319페이지부터 333페이지까지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것입니다.

 

장성택과 김정은 관계는 원래부터 껄끄러웠습니다. 장성택의 마음은 김정은 보다는 김정남에게 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경희는 달랐습니다.

 

오빠인 김정일이 김정은을 선택한 이상 오빠의 유언대로 김정은을 옹립하여 김씨 왕조의 혈통제를 유지해 나가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김정은 집권초기 장성택은 조카를 내세우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기보다는 오히려 권력공백상태를 이용해 돈 되는 이권은 다 행정부로 집중시켰습니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장성택 주위에 몰려들었습니다. 김정은이 이를 얼마나 불쾌하게 여기였는지는 책에 다 나와 있습니다. 고모부가 정말 미웠으나 북한의 모든 간부들을 쥐고 있는 고모가 살아있는데 잘 못 칼을 빼들었다간 큰일입니다.

 

한편 장성택이 야심가라는 사실을 제일 잘 아는 것은 당연히 아내인 김경희였습니다. 매형이 떠나면서 조카를 잘 도와주라고 부탁했건만 남편 장성택은 조카를 업신여기면서 남들 앞에서 삐뚤게 서있는가 하면 회의장에서 모든 간부들이 손을 높이 들고 박수치는데 건성건성 박수를 치는 등 날이 갈수록 눈꼴사나운 행동만 더 늘었습니다.

 

매형 김정일이 없으니 이제는 대동강변에 해당화관이라는 것을 지어놓고 제일 예쁜 애들은 다 모아 놓고 매일 저녁 술파티를 벌렸습니다. 집에서 아무리 말려도 알았다고 하고는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뇨병, 알콜중독 등으로 김경희가 제 몸도 가누기 힘든데 남편이 저런 모습을 하고 그것을 멈추어 세워줄 사람도 없으니 속만 썩어 들어갔을 것입니다.

 

이때 장성택은 엄청 큰 실수를 저지릅니다. 조카가 아직 정치를 모른다고 우습게보았고 아내 김경희가 폐인이 다 되었다고 우습게보았습니다.

 

장성택은 수십 년 동안 김 씨 가문의 사위로 있으면서 좌천과 회생을 반복했지만 김 씨 일가는 일단 결심하면 무서운 인간들이라는 것을 흥에 취해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고모의 마음을 읽은 조카 김정은이 김경희를 찾아옵니다.

“고모 제가 저 놈을 한 칼에 베겠으니 고모는 사람들만 모아주세요.”

 

결국 김정은과 김경희는 측근들을 모아 놓고 작전실행에 들어갑니다. 오직 김 씨 일가의 혈통에만 충성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아온 간부들은 김정은과 김경희를 지시를 받고 일시에 장성택 일당을 잡아들입니다.

 

두목들은 먼저 다 총살해 버려 장성택의 손발을 잘라 버립니다. 그리고 12월 당 전원회의를 엽니다.

 

지금까지 제가 이야기 한 것은 사극의 한 장면 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방금 제가 말씀 드린 내용들이 한낱 사극이 아니라는 점을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우선 2013년 당시만 하더라도 김정은은 집권 1년차 여서 간부들에 대한 파악도 없었고 국정 전반에 대한 요해도 시작 못한 상태였습니다.

 

이때 김정은과 북한 간부들을 이어주는 인전대 역할을 한 것이 김경희와 장성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2명을 동시에 친다는 것은 김정은에게도 엄청난 정치적 도박이었습니다.

 

장성택 숙청은 김경희의 묵인과 지지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김정은이 장성택을 치자고 해도 간부들은 김경희의 눈치를 보았을 것이고 만에 하나 김경희와 장성택에게 먼저 들어가면 게임 끝입니다.

 

두 번째 근거는 만일 김경희가 장성택 숙청을 지지하지 않았더라면 불안했던 김정은이 장성택 라인을 제거한 다음 연이어 김경희 라인을 제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장성택 일당이 숙청되면서 제일 큰 덕을 본 것은 김경희 라인이었습니다. 그 후부터 지금까지 김경희 라인에 있던 사람들은 다 승진했습니다.

 

지난 6년간 북한 군부와 보위성 등에서 수많은 간부들이 목이 날아났지만 김경희 라인은 건재함은 물론 오히려 북한의 실권세력으로 올라섰습니다. 아직도 살아 움직이는 최룡해, 박봉주, 조연준 등입니다.

 

최룡해에 대해 말한다면 어릴 때부터 김경희를 누나라고 하면서 따라 다녔습니다. 김경희 연줄로 후에 장성택 라인에 잠시 흡수되어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김정일에게 보고되어 농촌으로 좌천되었으나 다시 김경희에 의해 살아 나왔습니다.

 

박봉주는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 책임비서로 있다가 1993년 김경희가 공업부 부부장으로 데려 올라오고 그 후부터 북한에서 김경희 라인으로 분류되는 대표적인 인사입니다.

 

총리로 있으면서 북한에서 시장경제의 출발점이라고 볼수 있는 ‘7.1 경제개선관리’조치를 실시했다가 시장경제만을 확대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2007년 순천비날론 연합기업소 지배인으로 좌천되었습니다.

 

그때는 박봉주에게 미래가 없을 것 같았으나 김정일 사망 후 2013년 4월에 내각총리로 다시 올라왔습니다.

김경희의 후원이 없으면 기사회생이 불가능한 것이다. 문제는 장성택을 치는 2013년 12월 당 전원회의에서 제일 먼저 연단에 나서서 눈물을 흘리면서 장성택을 단죄한 것이 바로 박봉주입니다.

당시 북한 간부들은 김경희 라인의 대표 주자인 박봉주가 회의연단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장성택을 단죄하는 것을 보고 필경 뒤에는 김경희가 있다는 소문도 돌았습니다.

 

이번에 집에 들어간 경공업부장 안정수는 김경희의 오른팔이라고 불렸던 인물입니다.

 

김경희의 자금은 안정수가 관리했습니다. 그런데 안정수는 장성택 처형 후 오히려 고속 승진하여 당 정치국 위원까지 올라갑니다. 지난해 북한에서는 대대적인 인사교체가 2번 있었습니다.

 

4월에 있던 당 제7기 4차 전원회의를 계기로 김영남 상임위원장 등 원로들이 물러났고 지난 12월에 있는 당 제7기 5차 전원회의를 계기로 당 정치국 위원 5명이 물러났습니다.

 

특히 지난해 말에 물러난 당 정치국 위원 5명에 속하는 박광호, 리수용, 김평해, 태종수, 안정수 중 박광호를 제외한 나머지 4명은 수십 년 동안 김경희 라인에 있던 사람들입니다.

 

지난해 당 전원회의에서 당 국제사업담당 부위원장 자리에 이수용 대신 전 러시아대사였던 김형준이 임명되었는데 김형준도 북한에서 대표적인 김경희라인입니다.

 

김경희가 70년대 당 국제사업부에서 일할 때 김형준이 지도원으로 들어가 김경희가 과장으로 있던 유럽과에서 일했습니다.

김경희가 장성택일당 숙청을 발기하고 김정은의 후견역할을 했을 수 있는 가설은 필자의 경험에도 기초하고 있습니다.

저의 자서전 <3층 서기실의 암호> 388페이지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런던에 왔던 김정은의 형 김정철이 저에게 위스키를 마시라고 강요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한잔 따르겠다고 하니 김정철이 자기는 런던으로 오기 전날 누구를 찾아가 런던에 다녀오겠다고 인사하니 술을 꺼내면서 마시라고 해서 과음했다는 것입니다.

김정철이 외국에 다녀오겠다고 인사하러 찾아갈 사람은 김정은 밖에 없을 터인데 김정철이 하는 말이 본인은 술도 못 마시면서 자기 보고 술 마시라고 해서 할 수 없이 받아 마셨다는 것입니다.

 

당시 나는 김정철이 인사하러 찾아 갔을 사람이 누굴까, 만약 김정은이라면 김정철이 술을 못 마신다고 사람이라고 할 수 없겠는데 말입니다. 미스터리는 풀리지 않았습니다.

 

제 책이 출간된 후 여러 사람들이 저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그때 김정철이 인사하려 찾아갔다는 사람이 누구일 것 같으냐?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이라고 했으니 김정은은 아니다. 그럼 김정은 말고 김정철이 인사드리러 가야 할 사람이 북한에 또 있다는 말인가? 그가 누구인가? 당시 저는 설마 김경희?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어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 답은 2020년 이번 설에 찾았습니다. 그때 김정철이 외국에 다녀오겠다고 인사하려고 찾아갔던 사람은 김정은이 아니라 바로 김경희입니다.

 

김경희는 북한 내에서 알콜 중독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김경희는 2013년 12월 장성택 숙청 후부터 김 씨 가문을 구원하기 위해 그처럼 좋아하던 술도 딱 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때 김정철이 자기는 한잔도 안마시면서 자기 보고 마시라고 해서 과음했다고 웃으면서 핀잔을 준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당시 필자가 놀라웠던 것은 김정철의 이러한 고백에 주변에 있던 3층 서기실 간부들 중 놀라워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다들 덤덤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나에는 엄청 큰 미스터리인데 그들에게는 늘상 있는 일처럼 다가갔던 것입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지난 6년 동안 김정은 뒤를 김경희가 봐주고 있는 사실, 인사결정 때마다 김경희의 조언을 구하는 김정은, 김경희의 후견인 역할에 대해서 3층 서기실 측근 보좌진은 다 알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오늘 김경희의 부활 제2회 장성택 숙청의 비화는 여기에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을 기대해 주세요.

댓글 남기기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