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의 북한분석] 김경희등장은 후견정치 종식, 김정은 홀로 서기 선포

김경희의 등장은 6년동안 후견 정치 종식, 김정은 홀로서기 선포

 

2020년 1월 26일 일요일

 

김경희 등장 향후 북한정책에 미칠 영향은 ?

강경이냐 온건이냐 ?

꼰대냐 밀레니얼이냐 ?

수구파냐 소장파냐 ?

다가오고 있는 통일, 다그쳐야 할 준비 ?

 

김정은의 고모이자 처형당한 것으로 알려졌던 장성택의 부인 김경희 전 노동당 비서가 남편 처형(2013년 12월) 6년만에 공개 석상에 등장했다.

그저 나타난 것이 아니라 김정은, 이설주, 다음 자리에 앉음으로써 김씨일가의 서열이 김정은-김경희-김여정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공식화했다.

김경희의 등장으로서 지금까지 다 돌았던 김경희의 처형설은 일단 가짜 뉴스로 판명되었다.

김경희 등장은 북한주민들에게도 충격이여서 설날 북한 항간 특종 뉴스 ‘제1호’로 되었을 것이다.

김경희의 등장을 통해 김정은의 지난 6년간 북한 내부 정치흐름을 다시 들여다 보면서 한반도의 미래를 그려 본다.

 

  • 장성택파 숙청 누가 주도 ? 미스테리 김경희의 역할 이제는 베일 벗나 ?

 

김경희의 등장을 분석하면서 다시 장성택 숙청까지 거술러 올라가야 할 이유가 있을가 ?

 

장성택일당 숙청과 김경희사이의 관계에 정확한 표상을 그려 보는 것은 향후 한반도 정세발전을 점치는 데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필자가 2016년 여름 한국으로 망명하자 국정원은 물론 외국 정보기관들까지도 필자에게 장성택숙청 누가 주도, 김경희의 장성택 처형 동의 여부, 김경희 본인 생존 가능성, 권력기반이 약했던 김정은이 짧은 기간에 권력을 틀어쥘수 있었던 비결을 물어 보았다.

사실 이러한 질문들은 내가 자신에게 수십 번 했던 질문들이였다.

 

  • 장성택은 정말 처형되였는가 ?

 

이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장성택일당으로 분류되는 중앙당 행정부와 그 산하 54부에서 공개적으로 총살된 사람은 부부장과 과장급 11명이다.

그 나머지 수천명이 숙청되여 가족과 함께 지방으로 추방되였다.

그러나 장성택이 처형되는 것을 본 사람은 없다.

오히려 내가 북한에 들어갔던 2014년 2월 상당수의 북한 엘리트들은 장성택이 처형되지 않았고 감금상태에 있다고 했다. 당시 북한은 당내적으로 ‘장성택여독청산사업’을 3년동안 벌린다고 했다. 모든 간부들이 장성택이나 그 라인인 행정부, 54부와 있었던 일들을 자필로 빠짐 없이 써서 바치는 사업을 벌리고 있었다.

고위급 간부들속에서 돌아가는 말은 장성택여독청산이 끝날 때까지는 장성택을 살려둔다는 것이라는 것이였다. 그러나 그것도 쉬쉬 하면서 돌아가는 소문일 뿐이였다.

 

그럼 지금도 장성택이 살아 있을수 있을가 ?

 

그 물음에 확고히 장성택은 죽었다고 말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북한내부에서 돌아가는 정황을 보면 장성택은 이제는 없다고 볼수 있다.

북한에서 간부들이 숙청될 때 여러 등급이 있지만 총살과 같이 물리적으로 죽었을 때에는 모든 출판물들과 기록들에서까지 삭제된다.

장성택과 같이 수십년 동안 북한언론매체에 나와 있는 사람을 다 지워버린다는 것은 전 당, 전 국가적으로 해야 하는 사업인데 결국 2015년까지 북한은 이 사업을 마무리 했다.

이미 언론을 통해 장성택이 처형되였다고 공개 했으니 다시 번복할수도 없는 노릇이다.

북한에서 장성택여독청산 작업은 2016년초 평양시 교외 대성구역에 건설했던 민속공원을 다 부셔버림으로써 마무리 되었으며 이때 장성택도 내부적으로 처형되지 않았을가 싶다. 그러나 그것도 추측일뿐이다.

 

  • 장성택숙청은 누가 주도 했을가 ?

 

이번 김경희의 등장을 통해 장성택일당의 숙청은 김경희가 발기하고 주도는 김정은이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필자의 자서전 ‘3층 서기실의 암호’에도 서술되여 있듯이 장성택과 김정은 관계는 원래부터 껄끄러웠다.

장성택의 마음은 김정은 보다는 김정남에게 가 있었다.

그러나 김경희는 오빠인 김정일이 김정은을 선택한 이상 오빠의 유언대로 김정은을 옹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김정은 집권초기 장성택은 조카를 내세우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 놓기 보다는 오히려 권력공백상태를 이용해 돈 되는 이권은 다 행정부로 집중시켰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장성택 주위에 몰려 들었다. 장성택이 야심가라는 사실을 제일 잘 아는 것은 당연히 아내인 김경희였다. 김경희 모르게 장성택의 비리를 당 조직지도부가 수집한다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다.

김경희가 장성택숙청을 발기했다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요인들을 보면 보다 명백해 진다.

 

  • 우선, 김정은이 아무리 장성택이 밉다고 하더라도 고모가 눈을 펀히 뜨고 있는데 고모부를 칠수 없었다.

 

2013년 12월까지만 해도 김정은과 북한 간부들을 이어주는 인전대는 김경희와 장성택이였다. 이 2명을 동시에 친다는 것은 김정은에게도 엄청난 정치적도박이였다.

장성택숙청은 김경희의 발기나 묵인, 혹은 적극적인 지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김정은이 장성택을 치라고 해도 간부들은 김경희의 눈치를 보았을 것이다.

 

  • 다음으로, 장성택일당이 숙청되면서 반비례적으로 김경희라인은 더 승진했다는 사실이다.

 

장성택숙청이후 당지도부로 승진한 사람들은 대부분 다 김경희라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직도 살아 움직이는 최룡해, 박봉주, 조연준 등이다.

최룡해에 대해 말한다면 어릴 때부터 김경희를 누나라고 하면서 따라 다녔다.

김경희연줄로 후에 장성택라인에 잠시 흡수되여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김정일에게 보고되여 농촌으로 좌천되였으나 다시 김경희에 의해 살아 나왔다.

박봉주는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 책임비서로 있다가 1993년 김경희가 부장으로 있던 경공업부 부부장으로 들어간 후부터 북한에서 김경희라인으로 분류되는 대표적인 인사이다.

총리로 있으면서 북한에서 시장경제의 출발점이라고 볼수 있는 ‘7.1 경제개선관리’조치를 실시했다가 시장경제만을 확대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2007년 순천비날론 연합기업소 지배인으로 좌천되였다.

그때는 박봉주에게 미래가 없을 것 같았으나 김정일 사망후 2013년 4월에 내각총리로 다시 올라왔다. 김경희의 후원이 없으면 기사회생이 불가능한 것이다.

문제는 장성택을 치는 2013년 12월 당 전원회의에서 제일 먼저 연단에 나서서 눈물을 흘리면서 장성택을 단죄한 것이 바로 박봉주이다. 당시 북한 간부들은 김경희라인의 대표 주자인 박봉주가 회의연단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장성택을 단죄하는 것을 보고 필경 뒤에는 김경희가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김정은이 김경희를 자택연금 시켰다면 김경희라인도 다 물갈이 했겠는데 장성택라인은 다 숙청될 때 김경희라인은 승진일로를 걷는다.

이번에 집에 들어간 안정수는 김경희의 오른팔이라고 불이웠던 당 경공업부장이다. 김경희의 자금은 안정수가 관리했다. 그런데 안정수는 장성택처형후 오히려 고속 승진하여 당 정치국 위원까지 올라간다. 모두들 의아했다.

지난해 북한에서는 대대적인 인사교체가 2번 있었다.

4월에 있은 당 제7기 4차 전원회의를 계기로 김영남 상임위원장 등 원로들이 물러났고 지난 12월에 있는 당 제7기 5차 전원회의를 계기로 당 정치국 위원 5명이 물러 났다.

특히 지난해 말에 물러난 당 정치국 위원 5명에 속하는 박광호, 리수용, 김평해, 태종수, 안정수 중 박광호를 제외한 나머지 4명은 수십년 동안 김경희라인에 있던 사람들이다.

지난해 당 전원회의에서 당 국제사업담당 부위원장 자리에 이수용 대신 전 러시아대사였던 김형준이 임명되였는데 김형준도 북한에서 대표적인 김경희라인이다.

김경희가 70년대 당 국제사업부에서 일할 때 김형준이 지도원으로 들어갔다.

김경희가 과장으로 있던 유럽과에서 일했다.

김경희의 추천으로 당국제사업부 유럽담당과장, 외무성 부상으로 승진했다.

김형준은 젊어서부터 고 김용순비서와 함께 김경희를 따라 다닌 인물이다.

결국 이번에는 당 국제사업담당 부위원장 자리에까지 오른 것을 보면 이번 당 전원회의 인사까지에도 김경희의 입김이 상당히 작용하고 있는 것을 알수 있다.

 

  • 김경희가 장성택일당숙청을 발기하고 김정은의 후견역할을 했을수 있는 가설은 필자의 경험에도 기초하고 있다.

필자의 자서전 ‘3층 서기실의 암호’388페지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런던에 왔던 김정은의 형 김정철에 필자에게 위스키를 마시라고 강요했다. 그래서 필자도 한잔 따르겠다고 김정철에게 건의하니 자기는 런던으로 오기 전에 누구를 찾아가 런던에 다녀오겠다고 인사하니 술을 꺼내면서 마시라고 해서 과음했다는 것이다. 김정철이 외국에 다녀 오겠다고 인사하려 찾아갈 사람은 김정은밖에 없을터인데 김정철이 하는 말이 본인은 술도 못 마시면서 자기 보고 술 마시라고 해서 할수 없이 받아 마셨다는 것이다.

당시 나는 김정철이 인사하려 찾아 갔을 사람이 누굴가, 만약 김정은이라면 김정철이 술을 못 마신다고 하는 사람이 김정은일가 하고 생각해 보았으나 미스터리는 풀리지 않았다.

형의 런던 방문을 직접 꼼꼼히 챙긴것도 동생 김정은인데 형이 동생에게 내일 떠난다고 인사하려 찾아 들어간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그 답을 2020년 1월 26일인 오늘에야 찾았다.

그때 김정철이 외국에 다녀 오겠다고 인사하려고 찾아갔던 사람은 김정은이 아니라 바로 김경희였을 것이다.

김경희는 북한내에서 오래전부터 알콜 중독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김경희는 2013년 12월 장성택숙청 후부터 김씨가문을 구원하기 위해 그처럼 좋아하던 술도 딱 끊은 것 같다. 그래서 그때 김정철이 자기는 한잔도 못 마시면서 자기 보고 마시라고 해서 과음했다고 웃으면서 핀잔을 준 것 같았다.

그런데 당시 필자가 놀라웠던 것은 김정철의 이러한 고백에 주변에 있던 3층 서기실 간부들중 놀라워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다들 덤덤히 듣고만 있었다. 나에는 엄청 큰 미스테리인데 그들에게는 늘쌍 있는 일처럼 다가갔던 것이다.

지금와서 돌의켜 보면 지난 6년동안 김정은 뒤를 김경희가 봐주고 있는 사실, 중요한 결심을 채택할 때마다 김경희의 조언을 구하는 김정은의 행태, 김경희의 후견인 역할에 대해서 3층 서기실 측근 보좌진은 다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 김경희를 갑자기 등장시킨 이유는 ?

 

  • 김정은 위기설이냐 아니면 체제 공고성 시위냐 ?

 

이번에 김경희가 다시 살아오자 많은 분들에 나에게 물어보신다.

이번 김경희의 등장을 김정은체제의 위기로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 김정은의 건강 등에서 이상조짐이 보이니 갑자기 김경희를 등장시키고 김정은 유고시 김경희를 통해 혼란 과도기를 극복하려는 것이 아니냐이다.

일부는 지난 6년동안 김경희를 자택연금 시키고 힘을 다 뺐으니 이제는 내놓아도 별로 위협이 되지 않으니 이렇게 다시 공개한 것이 아니냐, 그러니 김정은체제가 더욱 공고해졌다는 것을 시위한 것이 아니냐고도 물어보셨다.

 

  • 그러나 지난 6년간 김경희가 김정은 뒤에서 최고급위급들을 관리하고 막후 후견인 역할을 해 왔다고 가정하면 김경희를 갑자기 등장시킨 원인은 김경희의 건강이 악화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외부에서 몰랐지 최룡해나 박봉주, 이수용 등 북한 최고위층은 김경희가 살아서 조카를 뒤에서 보필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김경희도 공개활동을 하지 않고 좀 더 뒤에서 조카를 도와주는 것이 더 편했을 것이다. 남편이 처형되었는데 아내가 무슨 마음이 편해서 남들 앞에 나타나겠는가 ?

그러나 김경희가 이렇게 등장했다는 것은 결국 김정은의 건강이 악화되서가 아니라 반대로 김경희의 건강과 관련 있는 것 같다.

만일 김경희가 갑자기 죽는다면 김정은은 영원히 고모를 독살했다는 누명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러니 빨리 북한사회에 고모의 건재감을 보여주어 실지 고무부를 처형한 장본인은 자신이 아니라 고모의 결심이였으며 자신은 고모의 결심을 이행했을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김정은의 장기집권에서 오명으로 남아있을 ‘김경희 독살설’을 털어버리고 고모부처형 책임을 고모에게 넘기는 김정은 다운 ‘묘수’이고 ‘꼼수’이다.

 

  • 그러면 김경희는 왜 공식 등장을 통해 장성택처형 책임을 지려고 했을가 ?

 

이에 대한 답은 역시 김씨일가내에서의 역할 분담에서 찾고 싶다.

자기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 책임을 지고 저승으로 가고 조카에게는 좋은 이미지만 남겨놓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북한주민들속에서 장성택처형에 아내인 김경희가 과연 동의했겠는가, 만일 조카가 고모를 자택연금 시키고 고모부를 죽였다면 김정은은 영원히 역사에 인간 패륜아로 남게 된다. 그러나 아내인 김경희의 결심에 따랐을뿐이라면 인간 패륜아는 수많은 여성편력기를 가지고 있는 장성택이 된다.

실지로 장성택일당 숙청후 수많은 연예인들이 장성택 애인으로 분류되여 없어졌는데 항간에서는 장성택의 혼외 자식이 한 버스를 넘었다는 얘기도 나돌았다.

결국 고모와 조카는 이번 김경희의 등장을 통해 장성택을 철저히 인간 패륜아로 몰고 김씨일가의 정통성을 세우는데 역할 분담을 했고 향후 김정은의 이미지를 관리하는데도 어느 정도 성공한 셈이다.

 

  • 김경희의 등장이 향후 북한 정책에 미칠 영향은 강경이냐 온건이냐 ?

 

  • 김경희는 북한 정치의 꼰대

 

앞으로 김경희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보면 향후 북한 정치발전의 행방을 예측해 볼수 있다.

김경희는 북한에서 ‘혁명의 2 세대,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꼰대, 수구세력, 이념파, 강경파에 속한다.

생모 김정숙처럼 여성치고 대단히 가부장적이며 북한체제의 도덕성, 순결성, 완벽성을 따지는 인물이다.

내가 어릴 때 김경희가 나의 집 앞 중앙사로청으로 출근했는데 수령님 자녀라고 어른들이 수군거리 길거리를 지나 다니는 모습을 유심히 바라 보았다.

그 때는 옆에 경호원도 없었는지 아니면 뒤에 따라오고 있어 내가 보지 못했는지 항상 김일성의 항일발치산 동료 이봉수, 황순희의 딸들하고만 다녔다.

일명 사로청 3인방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김경희는 당시 멋진 구두를 신지 않고 신의주신발공장에서 나오는 여성 편리화만 신고 다녔다.

김정일의 저녁 술파티와 여성편력에 대해 불만을 표출했던 인물은 김경희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버지 김일성에게는 일러 바치지 않았다고 들었다.

북한에서 처음 ‘휘바람’이란 노래가 나왔을 때 있은 일화이다.

길거리에서 학생들이 대열을 지어 걸어가면서 합창곡으로 ‘휘바람’을 부르는 것을 본 김경희는 간부들이 다 있는 자리에서 ‘오빠! 지금 학생들이 ‘휘바람’을 대열 합창곡으로 부르는데 대책을 세워야 해요‘라고 큰 소리로 얘기했다는 것이다.

마치도 무훈담처럼 돌아갔다.

아니나 다를가 그후 조직적으로 대열합창곡으로는 철저히 혁명가요만을 부르라는 지시가 내려와 ‘휘바람’이 대열합창곡 리스트에서 사라졌다.

김경희는 어릴 때 생모를 잃고 계모 밑에서 자라면서 성격이 강해졌고 아버지 김일성이 정적을 어떻게 쳐 내는가를 직접 목격하면서 자랐다.

북한에서 정적숙청 때마다 그 여파가 제일 먼저 미치는 것이 김정일과 김경희가 다니던 남산중학교, 김일성종합대학이다.

하루 아침에 같은 학급에 있던 간부집 자녀들이 수용소로 끌리워 간다.

김정은은 어릴 때 별채에 갇히워 있어 이러한 숙청을 몸으로 느끼지 못했지만 김경희는 어릴때부터 이것을 체험하면서 자랐다.

김정은의 무자비함은 대부분 김경희에게 넘어왔을 것이다.

이러한 김경희가 이제 살아 있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 이번 김경희의 등장은 김경희 후견 정치의 종말 선언, 김정은 홀로 서기 시작으로 볼수 있다.

 

지난해 2번 있은 당전원회의를 계기로 김경희라인의 많은 간부들이 집으로 들어갔다.

김경희라인은 대부분이 70대 80대로서 김경희보다 조금 우이거나 동년배들이다.

지금 북한 당중앙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최룡해나 박봉주, 김형준 등인데 그중 박봉주만 80대이다.

김경희의 나이가 46년생으로서 올해 74세이고 최룡해가 70세, 김형준이 71세이다.

지금 북한 권력서열에서 70대도 찾아보기 힘들다.

몇 년내로 70세대 다 들어가고 60대가 차지하게 되면 김정은과 간부들사이의 나이 격차가 30년으로 좁아질것이며 향후 10년내로 나이 격차는 20년으로 또 좁아 질 것이다.

벌써부터 김재룡, 김덕훈 등 김경희가 전혀 모르는 간부들이 핵심요직에 들어서고 있다.

이렇게 꼰대, 수구세력이 빠지고 김경희의 입김도 빠지면 김정은, 김여정 등 김씨 일가 3대가 독자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게 될것이며 이렇게 되면 정책에서 탄력성과 동시에 혼란도 동시에 커질 것이다.

향후 김정은의 고민은 생리적변화로 들어설 소장파, 실용파와 북한의 밀레니얼 세대를 어떻게 관리하는가이다.

공산주의체제는 단번 혁명을 통해 변혁되기 힘들다.

세대교체를 통해 무엇인가 새롭게 해보려는 시도들이 생기고 개혁이 진행되는 와중에 통제력을 잃으면 체제전환으로 넘어갔다는 것이 역사이다.

북한체제가 이미 실패한 체제라는 것을 모르는 북한 사람은 없다.

지난해 12월 김정은이 북한 군단장들을 백두산에 데리고 가 향후 북한의 운명은 혁명의 대를 어떻게 이어놓는가에 달려 있다고 우는 소리를 한 것도 다 이러한 이유와 관련된다.

김정은의 강경정치의 한계점이 다가 오고 있다.

우리는 북한의 소장파가 좌쪽 신호등을 켜고 경적은 요란하게 울리면서 실지로는 우측으로 핸들을 서서히 돌리지 않는지 눈여겨 보아야 한다.

수구와 이념은 퇴직하고 실용을 중시하는 소장파가 점차 권력을 잡는 것은 막을수 없는 생리적인 변화이다.

통일은 다가오고 있다.

향후 10년 혹은 20년내에 큰 일이 일어난다.

지금부터 적극적인 대비와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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