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동향] 김혁철은 누구인가 ?

김혁철은 누구인가 ?

작성: 2019년 1월 25일 금요일

김정은이 1월 23일 트럼프를 만나고 돌아온 김영철 부위원장을 만나준 자리에 김혁철과 박철이 동석하면서 24일부터 많은 분들이 저에게 김혁철과 박철에 대해 좀 이야기 해달라고 요구하여왔습니다.

모든 분들에게 구체적인 내용을 일일이 알리는 것이 좀 힘들어 이렇게 글로 모든 분들의 궁금증을 풀어드리고저 합니다.

박철에 대해서는 저는 전혀 아는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김혁철과는 오래동안 외무성에서 같이 근무했으므로 제가 알고 있는 내용을 공개합니다.

– 김혁철의 성장과정과 가정 환경

김혁철은 북한 고위 외교관의 집에서 태여났습니다. 일단 출신은 금수저입니다.

김혁철의 아버지는 북한노동당 국제부에서 오래동안 외교사업을 하다가 2000년대초에 캄보디아주재 대사로 파견되였습니다.

저는 김혁철의 아버지와 외무성에서 함꼐 근무한 경력이 없어 아버지의 이름은 생각나지 않습니다.

아마 여러분이 인터넷을 통해 2000년대 캄보디아에서 대사를 지낸 북한 대사들중에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을 찾아보면 혹시 찾아낼수도 있을 것입니다.

김혁철의 아버지는 캄보디아에서 돌아온 후 퇴직하였습니다.

김혁철은 제가 한동안 다닌 적이 있는 평양외국어학원 프랑스어과를 거쳐 평양외국어대학 프랑스어과를 졸업하였습니다.

– 외교관으로서의 경력

김혁철은 2000년대초에 대학을 졸업하고 외무성에 입직하였습니다.

김혁철이 향후 북미협상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가를 알려면 이 대목에서 북한외무성의 구조에 대하여 상식적으로 알고 넘어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0 북한 외무성 구조

북한외무성은 구조적으로 다른 나라들과의 외교활동을 직접 벌리는 지역국(일명 행동라인), 외교정책과 전략을 작성하는 정책국(전략라인, 이전에는 참사실, 2000년대는 9국이라고 불리움)과 외교활동을 측면에서 보장하는 의전, 영사, 보도 등 보장부서로 구성되여 있습니다.

북한외교관들은 젊어서 대학을 졸업하면 지역국 즉 행동라인쪽을 선호합니다.

지역국으로 들어가야 몇 년내로 해외 대사관으로 발령을 빨리 받을수 있기 때문입니다.

살기 힘드니 일단 해외로 빨리 빠질수 있는 부서를 선호하며 힘이 있는 집 자녀들은 행동라인쪽으로 갑니다.

제가 있었던 유럽담당국, 지금 미국과의 협상을 하는 최선희부상이 있었던 5국(미국담당국)은 지역담당 부서입니다.

전략라인에서 일하게 되면 아침부터 저녁 늦게 까지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정세를 분석평가하고 정책안을 만들어 최고지도부에 보고해야 하는 등 일은 엄청 고달픈데 비해 한 자리에서 오래 동안 일하다나니 해외발령도 지역부서에 비해 좀 느린 편입니다.

전략라인에서 일하다보면 새 인물을 보충하기 힘들어 해외에도 잘 발령해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략라인에서 일하게 되면 김정일과 김정은이 외무성으로 내려보내 주는 중요한 내부극비문건들을 다 열람하고 한국 신문자료들을 비롯하여 일반 지역부서에서는 볼수 없는 대량의 정보에 접근할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외교관으로 발전하려고 할 때 전략형으로 나가겠는가 행동형으로 발전하겠는가를 잘 결심해야 합니다.

전략형으로 나가면 20대부터 30대 후반까지 일정한 실력이 축적될 때 까지 경제생활에 쪼들리게 되어 좀 고달풉니다.

그러나 10년동안 전략부서에서 일하면 40대초반부터는 다른 사람보다 도를 닦았으니 초고속 승진의 길에 오를수 있습니다.

지금 북한 외무상 이용호는 40대에 외무성 참사(부상급이나 행동이 아니라 전략을 작성하므로 참사라고 호칭)를 하면서 전략담당 부서였던 9국을 담당했으며 김계관 1부상도 1 부상이 되기 전에는 9국 담당 참사였습니다.

0그러면 김혁철로 돌아오겠습니다.

일반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외무성에서 일을 시작하여 5-6년정도 되면 해외대사관으로 발령 받을수 있는데 김혁철이 외무성에 들어 올 때 당국제부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캄보디아 주재 북한 대사로 발령이 났습니다.

북한에서는 아버지가 해외 대사관으로 발령이 나면 아들이 아무리 직업적인 외교관이라고 하여도 대표단으로 해외에 나가는 것도 지장이 있고 더구나 해외발령은 꿈도 못 꿉니다.

그래서인지 김혁철은 처음부터 해외발령의 꿈을 접고 북한외무성에서 누구도 가기 싫어 하는 전략부서인 9국으로 자진해서 갔습니다.

당시 주변에서 하루 종일 글만 써야 하는 고리 타분한 부서에 자진해서 가는데 대해 의아해 했습니다.

당시 9국을 담당해보던 참사 이용호(현 북한외무상)가 김혁철이 총명함을 먼저 알아보고 그를 자기 수하에 두고 오래 동안 가르칩니다.

결국 몇 년 안있어 김혁철은 젊은 나이에 북한의 전략보고서를 작성하는 핵심상무조 즉 TF에 망라되여 활동합니다.

2005년 6자회담이 베이징에서 진행될 때 김혁철은 젊은 성원이여서 별로 눈에 뜨이지않았지만 그때 벌써 북측 단장이였던 김계관 1부상의 연설문을 뒤에서 작성해 주는 자리에 까지 올라섭니다.

김혁철은 6자회담과 2006년 첫 북핵실험과 관련한 대응처리에서 특출한 공로를 세운 것을 인정 받아 2009년 외무성 9국 부국장으로 승진하는데 30대에 외무성 전략부서를 이끄는 9국 부국장이 된 것은 전례가 없던 일이였습니다.

그후 2012년 김정은시대가 시작되면서 젊은 간부들을 대량 임명할데 대한 김정은의 인사정책 흐름을 타고 김혁철은 다시 외무성 참사로 승진하는데 30대에 참사(부상급)으로 승진한 것은 북한외교역사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여서 다들 놀랐습니다.

그후 김계관 1부상은 김혁철이 2000년대초부터 거의 10년동안 해외 대사관에서 한번도 생활해보지 못하고 자기 밑에서 고생만 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며 2014년말 그를 스페인주재 대사로 내보냅니다.

이렇게 김혁철은 북한 외무성에서 젊었을 때부터 김계관, 이용호에 의해서 체계적으로 양성된 전략형 인물입니다.

– 김혁철의 현 상황

김혁철은 2017년 스페인이 북한의 핵실험에 걸어 추방한후 평양으로 돌아갔습니다.

2018년 한해동안 보이지 않던 김혁철이 이번에 김영철의 미국방문을 수행한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들이 있을수 있습니다.

0 하나는 김혁철이 북한 외무성 전략국을 이끄는 참사 자리로 다시 복귀하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정은이 김영철의 미국방문에 최광일 미국담당 부국장 대신 김혁철 참사를 같이 보낸 것은 그만큼 김영철의 미국방문을 중시하고 있다는 표시와 함꼐 외무성 전략통을 김영철 옆에 붙임으로서 김영철이 미국방문 기간 김정은의 의도대로 움직이도록 방조도 하고 잘 통제도 하자는데 목적이 있었을수 있습니다.

0 두 번째 가능성은 김혁철이 아예 김영철라인쪽인 당 통일전선부로 옮겨 앉았을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북한에서 통전부의 수장은 많은 경우 외교라인쪽에서 갔습니다.

윤기복, 김중린 등 예외도 있지만 허담, 김용순, 김양건 등 외교관들이 많았습니다.

김정일때에는 외교관들을 대량 통전부쪽으로 배치하여 통전부의 실력을 보충해주기도 했습니다.

김영철이 미국과의 협상을 주도하면서 김정은에게 요구하여 외무성에서 전략형인 김혁철을 통전부로 아예 데려왔을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김혁철이 아직도 외무성 참사로 일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 김혁철과 최선희 사이의 역할 분담

김혁철이 등장하면서 김혁철이 최선희부상 대신으로 미국과의 협상을 주도하게 되었다는 보도가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김혁철이 아직 북한외무성에 남아 있다면 북한외교구조에서 김혁철과 최선희의 역할은 다룹니다.

실례로 6.12 싱가포르합의에서 북한과 미국이 ‘선 신뢰구축 후 비핵화’라는 북핵비핵화의 원칙에 합의합니다.

이런 경우 향후 ‘ 선 신뢰구축 후 비핵화’라는 전략적인 큰 틀거리 그림은 5국에서 내놓는 경우도 있으나 대체로 김혁철이 담당한 9국에서 내놓습니다.

그러나 일단 미국과 북한사이에 ‘선 신뢰구축 후 비핵화’ 그림에 합의되였다면 구체적인 그림을 어떻게 그리겠는가 즉 단계적인 매 공정마다 호상 어떤 살라미를 주고 받겠는가 하는 디테일(구체적인 부문)은 최선희 부상이 담당한 미국담당국이 맡아 해결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왜 미국담당국(5국)에서 다 해결하지 않고 9국이 미국국의 사업에 끼여 들어 복잡한 그림을 그리게 하는가고 생각할수 있는데 현실 외교협상에서 정책 작성과 현상 협상팀이 같은 사람들로 이루어져 협상도 하고 작전도 짜면서 한데 어울려 돌아가면 정신도 없거니와 어떤 경우는 큰 것을 보지 못하고 당면한 앞만 보고 나갈수 있는 페단이 있습니다.

이러한 페단을 극복하기 위해 북한은 전략부서와 행동부서를 갈라놓고 서로 하나로 조화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호상 경쟁시키는 식으로 경쟁구조를 세워놓고 최상의 아이디어와 방도를 찾는 구조로 일합니다.

– 김정은이 김혁철을 김영철과 함께 미국에 목적

6.12 싱가포르 합의에서 ‘선 신뢰구축 후 비핵화’라는 도식이 북한과 미국사이에 이미 합의되였는데 전략형인 김혁철이 이번에 미국에 갔다는 것은 미국이 6.12합의를 잘 못빠진 함정으로 간주면서 2차 미북정상회담에서 이미 합의한 북한 비핵화의 틀거리 합의를 다시 하자고 나오고 있지 않는가 하고 생각됩니다.

북한으로서는 트럼프가 이미 6.12싱가포르합의에 동의하고서도 지금와서 다시 뒤집어 엎으려는데 대해 각성을 가지고 전략형인 김혁철을 보내 6.12합의에 트럼프를 다시 결박시켜 놓을 필요성을 느꼈을것입니다.

김정은이 이번에 김영철을 만난 자리에서 미국의 답변을 기다리겠다고 한 것은 아직도 2차 미북정상회담에서 나와야 할 틀거리합의에 북한과 미국이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북한은 24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23일 김정은이 김영철을 만나준 사실을 사진과 함께 보도했으나 노동신문 등 일반 주민들을 위한 언론에는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북한 자체가 아직도 2차 미북정상회담의 개최가능성에 확신이 없어 한다는 것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상 김혁철을 통해 북한외교의 실상을 잠간 들여다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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