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신문] 11월 19~11월 26일 북한 노동신문 동향입니다.

2018년 11월 19일 월요일부터 11월 26일 월요일까지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
대남언론매체 ‘우리 민족끼리’ 등 북한언론을 통해 본 ‘지난주 북한동향’입니다.

지난주와 26일 현재 북한동향에서 주목되는 것은


첫째로, 김정은의 공개활동이 없은 것입니다.

지난주 북한언론에 김정은의 공개활동이 보도 된 것이 없습니다.

아마 년내 남한방문, 미국과의 2차 정상회담준비 등 전략적 결단을 내려야 할 내부 회의들이 많고 읽어 보고
결론 주어야 할 ‘제의서, 의견보고’ 문건들이 사무실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밖으로 나갈 시간적여유가 없을 것입니다.

김정은의 연내 남한방문이 이슈화되면서 북한역사에서 북한지도자가 적대국인 한국을 방문한 전례가 없었고
최고 존엄을 신격화해야 하는 북한지도부내에서도 고민이 깊을 것으로 봅니다.

지금 북한으로서 가장 큰 고민은 김정은이 한국을 방문하는 경우 문재인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처럼 환영인파가 모여
김정은을 환영하는 장면을 만들어 균형을 보장해야 하는데 다원화된 한국사회에서 이러한 것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최근 광화문광장을 비롯하여 서울중심가에서 백두칭송위원회 등 김정은의 남한방문 환영준비위원회들이 조직되어 활동하나
이와 동시에 백두청산위원회 같은 반북보수단체들의 활동도 점차 활발해져
김정은으로서는 남남갈등이 심한 서울 보다는 조용한 제주도가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북한언론들이 남한주민들속에서 김정은을 민족의 지도자로 높이 칭송하고 있다고 선전해 왔으므로
김정은이 남한을 방문한다면 가장 좋기는 서울에서 환영인파를 만들어 내야 의의가 큽니다.

북한내부구조를 보면 북한최고지도자의 남한방문문제가 제기되면 밑의 일군들이나 기관들에서는
위험한 ‘적진 속으로 내려가시면 안된다’고 만류하는 체계와 문화 입니다.

북한은 모든 선전선동수단들과 조직구조들은 ‘수령의 안전을 최우선 보장하는 것이 혁명의 승패’를 좌우하는 문제라고 규정하고
북한주민들이 수령의 만수무강을 위해서 한 몸을 초개와 같이 바쳐야 한다고 세뇌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북한영화들을 보면 김일성이 항일투쟁을 할 때 당시 ‘중국구국국’(우익쪽의 반일 무장세력)과 손잡으로 담판하러 가겠다고 할 때
모든 지휘관들이 앞을 막아 나서면서 ‘장군님의 안전은 우리 혁명의 승패와 관련된 문제’라고 외칩니다.

1994년 7월 김일성이 김영삼 대통령의 초청으로 남한을 방문하려고 할 때도 모든 북한간부들은 김일성에게
‘남에 내려가면 적들이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르니 수령님께서 절대 내려가시면 안됩니다’라고 보고 드렸습니다.

북한에서는 간부들이 그렇게 행동해야 김일성 앞에서 충성도가 높은 간부로,
정말 수령의 안위를 걱정하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김일성은 간부들을 모아놓고 ‘내가 살면 몇 년 살겠는가, 내 안위를 걱정하지 말라,
내가 남조선에 내려가 국회에서 연설만 한번 하면 온 남조선땅이 나에 대한 칭송으로 물결칠 것이고
그러면 결국 나는 통일대통령이 되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당시 나는 외무성에서 김일성의 이러한 교시를 전달받으면서
‘수령님께서 이렇게 자유민주주의체계를 모르고 계시는가’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7월 8일 김일성이 급사하면서 결국 남한방문은 이루어지지 못했으나
그때 김일성이 한국에 내려왔더라면 발전된 남한을 보고 대단한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2000년 6.15공동선언 채택 후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을 서울에 초청하고 김정일도 한국방문을 약속하였습니다.

2001년 5월 북한을 방문하여 김정일을 만난 스웨덴총리 요한 페르손은 김정일에게 서울을 한번만 방문하면
세계적으로 김정일의 인기가 급상승하고 북한의 이미지도 한순에 개선될 것이라고 권고하였습니다.

그때 김정일은 페스손에게 서울에 내려가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페르손과의 회담장에서 나오면서 김정일은 ‘페르손이 분명 김대중의 부탁을 받고 온 것 같다.
김대중이 정말 내가 서울에 내려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정말 어리석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당시 김정일 옆에서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누가 김정일의 속셈을 모르고
‘장군님께서 서울에 내려가시면 대단하실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의 대외환경 개선에서 일대 전환이 일어날 것입니다’라고
보고 드렸다간 ‘목이 날아가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김정은의 사정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젊은 김정은으로서는 매일 TV를 통해 보는 서울을 한번 구경해볼 마음이 굴뚝 같을 것입니다.

한국 콘텐츠를 많이 본 이설주도 옆에서 한번 가보자고 계속 조를 것이고
한국을 보고 간 김여정도 오빠에게 한번 가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족내부의 분위기와는 달리 김정은의 최측근인 김창선은 물론 김영남, 최룡해, 김영철, 이용호 등
김정은 주변의 고위간부들은 ‘원수님 내려가시면 안 됩니다. 남조선놈들이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
원수님의 운명은 우리의 운명입니다. 원수님의 안녕을 가지고 모험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하면서 열띤 충성경쟁을 벌릴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속에서 김정은이 그래도 한번 가보겠다고 결단을 내릴지 의문입니다.


둘째로, 26일 북한은 ‘노동신문’ 사설 ‘《인권》타령에 비낀 미국의 추악한 속내를 해부한다’ 개인논평을 통해
유엔에서 반북인권결의안을 채택하려는 미국을 정조준 하여 비난하였습니다.

이번에 북한이 북한 인권문제와 관련한 미국의 정책을 규정짓는 흥미로운 사자성구 ‘지록위마’를 썼습니다.

‘지록위마’라는 사자성구는 저도 처음 보는 성구입니다.

사실 11월 15일 유엔 제 3위원회에서 반북인권결의안이 통과되였는데도 며칠동안 북한이 침묵하고 있어
저도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북한이 10일만인 26일 포문을 열었습니다.

북한의 체제구조상 유엔 3위원회에서 반북결의안이 나왔는데도
미국과의 협상분위기 때문에 가만 있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번 북한의 논조에 상당히 의미심장한 내용들이 있습니다.

북한은 북한이 핵을 가진 전략적국가가 되었으므로 미국과 북한사이의 정치군사적력학관계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고 하면서
미국이 변화된 북한의 전략적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미국으로부터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겠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지난주 북한이 중국과의 경제 및 문화협조에 관한 협정 체결 65돐을 매우 크게 기념한 것을 통해
대북제재속에서도 중국의 도움으로 북한의 숨통이 열리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65년전 중국의 주은래총리는 북한의 김일성과 중국이 매해 북한에 일정한 무상경제원조를 제공한다는 것을
기본 내용으로 하는 경제 및 문화협조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였습니다.

당시 베트남전에 막대한 재정을 쏟아 부어야 할 중국으로서는 이전 쏘련과의 대결에서 북한을 중국 쪽으로 끌어당기기 위해
매해 거의 1억불 이상 되는 각종 유류제품과 기계설비 부속품 등을 무상으로 지원하였습니다.

북한 공군의 항공유도 다 무상경제원조분으로 제공 되었습니다.

북한은 중국의 이러한 동향을 잘 이용하여 중국으로부터 받아낼 것은 다 받아내면서도
이전 쏘련으로부터도 매해 무상경제원조를 받았습니다.

소련도 북한을 중국에 떼우지 않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무상경제원조를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북한이 70년대까지 한국보다 잘 살 수 있은 것은
이렇게 중국과 소련사이의 갈등을 잘 이용하여 많은 경제 원조를 받은 것과 관련됩니다.

북한의 역사는 결국 대국들 사이의 모순과 갈등을 잘 이용한 역사라고 볼 수 있으며
지금도 미국과 중러의 갈등은 물론 미국과 한국사이의 갈등도 잘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으로부터 매해 1억불 이상 되는 경제 원조를 받으면서 그것을 수십 개 단위가 쪼개여
제 각기 자기 단위에 필요한 것을 신청하여 받다나니 몇십 년동안 이렇다하게 건설한 공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2003년 북한외무성 중국담당국에서 김정일에게 2003년분으로 무상경제원조를 받아낼 때 각종 물품으로
쪼개지 말고 유리공장 같이 공장들을 하나씩 받아내야 북한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보고 올려 김정일로부터 결론 받았습니다.

중국이 동의하여 2003년부터 2천 400만 달러를 투자해
부지 약 9만평, 건평 5만여 평 규모 대안유리공장건설을 시작해 2005년 10월에 준공식을 가졌습니다.

당시 김정일이 너무 기뻐 준공식에 참가했습니다.

대안유리공장은 북한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왜나면 1990년대 북한이 남포에 있던 일제 때 건설한 유리공장이 전기를 너무 많이 쓰고 환경을 오염시킨다고 폭파해 버렸습니다.

그 후 북한은 새 공장을 짓는다고 했으나 결국 건설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북한에 유리병이 없어 중국에서 맥주를 수입하고 그 맥주병을 북한의 음료용 포장기로 쓸 정도였습니다.

일반 주민들의 고통이 컸는데 중국이 2005년에 유리공장을 건설해 주어 수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김정일은 이제부터는 중국의 무상경제원조분을 이것저것 쪼개여 받지 말고
매해 공장 하나씩 받아내는 방향에서 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래서 외무성과 무역성도 그런 방향에서 안을 작성하였는데 북한에서 수십 개 기관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군 공군의 항공유, 동기, 하기 훈련 때 훈련용 경유 등 중국에서 무상경제분으로 받아내곤 하였는데
이렇게 공장을 받아내는 방식으로 가면 군대부터 큰 일이 나기 때문입니다.

결국 2005년에 유리공장 하나를 받아내는 것으로 막을 내리고 매해 수십 개 단위가
내각에 제 각기 필요 분을 제기하고 1억불을 쪼개는 방식으로 되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이번에 북한은 북중 경제 및 문화협조에 관한 협정체결 65돐에 즈음하여 평양주재 중국대사관 사람들을 대안유리공장에 데리고 가
유리공장이 조중친선의 상징이라고 치켜세웠으며 평양고려호텔에서 성대한 연회도 마련하였습니다.

물론 65돐이라는 정주년이여서 크게 기념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사실 더 큰 의미는 중국이 대북제제에도 불구하고
올해분 무상경제원조분을 다 주었고 그래서 북한으로서도 대단히 감사해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올해분 원조가 들어가지 않았다면 북한 간부들이 총 출동하여 협정체결 65돐 행사에 나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북한과 중국은 통상 매해 1월이면 그 해분 무상경제원조문제를 토의할 정부간 회담을 열고 어떤 물품을 무상으로 제공하겠는가를
토의하는데 올해 3월까지도 북한과의 관계가 매끄럽지 않았던 중국이 왼새끼를 꼬았습니다.

결국 김정은이 3월 시진핑을 찾아가 몸을 낮추고 인사를 올린 후에야 이 문제가 해결돼 김정은이 시진핑을 만난 후
북한 무역성 구본태부상이 중국에 가 올해분 무상경제원조를 받아내는데 성공합니다.

김정은은 이렇게 3월 중국의 무상경제원조라는 우군을 먼저 만들어 놓고
4.27 판문점 회담, 6.12 미북정상회담에 나와 배 내밀고 협상주도권을 쥘수 있었습니다.

중국이 북한에 매해 무상으로 주는 경제원조가 결국 올해도 제공됨으로써
대북제재로 가쁜 숨을 몰아쉬던 북한의 숨통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상 지난주와 26일 현재 북한 동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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