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경협시리즈] 2편: 2012년부터 2013년 3월 사이 김정은의 경제정책 분석

김정은의 경제정책 진화과정은 김정은이 집권한 2012년부터 현재 2018년 10월까지 3단계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2012년 초부터 2013년 3월 핵경제병진노선 채택까지로 보고, 첫 번째 단계를 ‘신 경제정책 모색기’로 볼 수 있다.

 

오늘 칼럼에서는 첫 번째 단계에 대하여 이야기 하려고 한다.

 

김정은 집권 초기 1년 동안 매주 토요일 10시부터 12시 사이에 외무성 토요일 정규화 때 전달된 김정은의 ‘말씀’을 보면 김정은이 북한 경제개선 문제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명백한 정책이 정립되지는 않았으나 김정은의 ‘현지지도’시 내뱉은 ‘말씀’들을 묶어 보면 교육 개선, 경제 운영방식 개혁에 상당한 집착을 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정은은 북한 교육이 세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문제, 유학생들을 유럽에 많이 내보내는 문제, 학생들이 집단체조와 같은 사회적 동원에 너무 치중하는 문제 등을 거론하였다. 이에 군 단위로 제1 고등중학교를 하나씩 지어 수재 교육을 강화할 데에 대한 문제, 특히 산업미술 개선에 엄청난 관심을 보였다.

경제 운영방식에서는 스위스에서 한 가정이 북한의 한 개 군에 맞먹는 식량을 생산하고 있는 점을 거들면서 농업 생산구조를 연구해 볼 데에 대한 문제, 쌀과 강냉이와 같은 전통 작물 생산을 가지고 협동농장의 사업성과를 평가하지 말고 채소생산 같이 농장의 수익평가를 기본으로 할 데에 대한 문제, 관광을 발전시킬 데에 대한 문제 등을 강조했다.

특히 외국기업들과의 합영 합작을 강조하면서 스위스에서 귀국한 이수영을 초대 북한 합영 투자 위원회에 임명하였다.

김정은이 집권 초기에 내놓았던 아이디어들 중에서 교육과 과학기술, 관광업 발전은 2012년부터 현재까지 일관하게 이어지고 있는 분야이다.

그러므로 교육, 과학기술, 관광업 분야가 지난 6년 동안 어떻게 진화되어 왔는가를 김정은의 경제정책 첫 번째 단계인 ‘모색시기’에서 언급하고 넘어가려고 한다.

 

교육, 과학기술정책

 

  • 김정은은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은하위성 과학자거리, 미래 과학자거리, 여명거리 건설과 과학기술 전당, 과학자 휴양소, 미래상점 등을 통해 북한에서 과학자, 교원들의 대우를 많이 개선해 주었다.

 

  • 파격적인 조치로 인텔리들의 환심을 사고 자기의 과학중시 정책을 홍보하였다.
    실례로, 평양음악대학 무용학부 건물을 빼앗아 생물공학 분원에 주었으며, 쑥섬에 건설 중이던 실내 축구 경기장 건설을 중단시키고 과학기술 전당을 건설하도록 했다.

 

  • 평양시 중구역에 당 통일전선부에서 건설했던 외화벌이 회사 건물을 빼앗아 평양의학대학 전자도서관을 꾸리도록 해주어 사람들 속에서 쓸 데 없는 극장만 계속 짓던 김정일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반응이 제기되게 하였다.

 

  • 대학생들의 학업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집단체조 ‘아리랑’ 공연을 중단시켰다.

 

  • 비록 제한적이기는 하나 국가 과학원, 과학기술 전당, 김책 공업종합대학, 김일성종합대학에 외국과 연결된 인터넷 열람체계를 신설하였다.
    현재 북한에서 인터넷 열람이 열린 곳은 외무성, 보위부, 군대 정찰총국, 당 통일전선사업부와 같은 특수기관들과 과학 연구기관들밖에 없다.

 

  • 2013년에는 해외 근무 인원들이 학생 연령에 관계없이 대학생 자녀들을 데리고 나가도록 함으로써 외국대학에서 고급인력을 양성하려고 하였다.

 

  • 고급 IT 인력들의 해외진출과 수익사업을 장려하고 이를 통한 통치자금 확보도 중시하였다.

 

  • 김정은은 교육과 과학기술 분야에서 일부 구조적인 개혁도 추진했다.
    집권 초기부터 ‘지식경제’ 건설이라는 새로운 과업을 제시하고 과학기술체제 개편과 첨단산업 육성, 지식보급망도 확대하였다.

 

  • 김정일이 인민경제의 주체화를 내세우면서 함흥 비날론 공장의 현대화, 석탄가스화 실현, 산소분리기 방법에 의한 주체 철 완성과 같은 투입규모가 큰 대형기간산업 갱신을 강조한 데에 비하면 김정은은 현실문제 타개와 투자 대비 효과가 빨리 나타날 수 있는 현실적인 분야를 중시했다고 볼 수 있다.

 

  • 김정은은 집권 초기인 2012년 12월 국가과학원 창립 60주년을 맞으면서 산하 연구개발 체계를 첨단기술과 핵심기술 위주로 재편하도록 했으며 국가 우주개발국을 설립하고 국제적인 교류를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 2013-2017년까지의 제 4차 과학기술 발전 5개년 계획기간을 설정하고 먹는 문제와 에너지문제, 첨단기술 육성분야를 치켜세우라고 했다.

 

  • 실천적으로는 산업전반의 CNC(Computerized Numerical Control)화를 강화하고 정보통신망 구축과 IT 산업 육성, 전자상거래도 추진했다.

 

  • 과학기술전당 신축과 내부 인트라넷 활용을 통해 전국적인 과학기술지식 보급과 사이버교육, 원격 화상 진료 등도 추진했다.

 

  • 김정은은 이러한 구조적인 개편을 통해 내가 비록 고모부인 장성택 등을 숙청 했으나, 그것은 나라의 근대화를 위한 조치였으며 김정은은 국제적인 추세도 아는 합리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과학을 중시하고 과학자들을 잘 대우한다는 인상을 확산시키려 하였다.

 

관광업 중시 정책

 

  • 김정은은 관광업에는 대단한 집착을 보였을 뿐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유지되어 오던 관광업의 많은 분야를 직접 개혁하기도 하였다.
    2012년 초 김정은은 미국과 적대관계에 있는 북한이 외국으로부터 대대적인 투자를 이끌어내기 어려운 상태에서 손쉽게 외화를 벌려면 관광을 발전시켜야 한다면서 관광산업을 외국인들을 끌어들여 외화를 버는 사업으로만 간주하지 말고 국내 주민들을 위한 국내관광도 발전시켜야 한다고 하였다. 덧붙여 전망적으로 보았을 때 북한주민들도 한해 5만 명 정도 외국관광을 떠나는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하였다.

 

  • 당시 김정은의 이러한 ‘말씀’을 전달받으면서 북한 외무성 외교관들은 속으로 관광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말은 맞지만 ‘젊은 양반이 나가도 너무 나간다.’, ‘한해에 5만 명 이상 관광하도록 허용하면 다 탈북 하여 금방 무너질 것이다.’, ‘비현실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당시 김정은의 말속에는 매우 의의 있는 내용도 있었다.
    관광을 체제선전 수단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외화벌이를 위한 경제적 수단으로 간주해야 하며 관광 상품도 선전효과가 있는 대상만 하지 말고 자연, 휴식, 체육, 모험 등 다양화 하라는 것 등이다.
    이것은 확실히 스위스에서 오래 동안 생활하면서 관광업의 득실관계를 면밀히 주시한 사람의 생각인 것이다.
    그 후 김정은의 생각 중 상당히 많은 것이 북한 현실에 구현되었다.

 

관광업 장려를 위해 지난 5년 동안 김정은이 취한 조치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 김정은의 지시로 2013년부터 복잡한 관광비자 발급절차가 간소화되었다.
    지난 시기에는 외국 관광객이 제기되면 현지 대사관이나 북한 관광회사에서 해당 대상에 대한 비자발급 신청서를 외무성 국내 사업국, 국가보위성의 출입국 감독국에 보냈다. 보위성에서 내부 컴퓨터의 데이터 망을 통해 해당 인물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고 별 문제 없으면 해당 대표부에 비자발급 번호를 주었는데 이 기간이 보통 3-4주 정도 걸렸다.
    그러나 지금은 관광객 명단을 제기하면 먼저 승인을 준 후 관광객의 신원정보 사항을 검열하는 체계로 바뀌었다.
    결국 관광비자 발급이 한주일내로 단축되었다.
    이것은 북한체제에서는 ‘혁명’이라고 볼 수 있다.

 

  • 국가 관광총국이 모든 것을 주관하던 독점체계를 부수고 여러 관광회사들이 호상 경쟁하는 체계를 수립한 것이다.
    2012년 김정은은 국가 관광총국에 대한 관할권을 내각으로부터 당 중앙위원회 39호실로 옮기고 중앙당에서 관광을 직접 주도하도록 하였으며 국가 관광총국 외에 청년동맹은 청소년 관광사, 체육 지도위원회는 체육 관광사, 통일전선사업부는 해외동포위원회 등을 통해 저마다 관광객을 유치하여 외화를 벌어 바치도록 하는 경쟁구조를 수립하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군부까지도 관광업에 나서도록 승인한 것이다.

 

  • 김씨 가문의 우상화 시설에 대한 참관 위주로부터 자연, 문화, 취미로 관광 상품을 다양화한 것이다.

    김정일 시대에는 관광 상품이 우상화 대상 홍보 선전에 치중하였다.
    외국인들이 북한에 가면 제일 먼저 김일성 동상에 인사하고 그 다음부터 혁명사적관, 김일성 생가, 주체사상탑, 지하철 등 홍보 수단들만 참관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리고 참관 후 관광객들에게서 좋은 반응을 받아내고 관광을 통해 몇 명을 친북인사로 만들었는가를 관광 안내원들의 주 생활총화에서 정치적으로 총화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최근 북한의 관광 상품이 상당히 다양화되었다.
    매년 4월 평양 마라손 대회, 여름에는 태성호 골프관광, 겨울에는 마식령 스키관광, 4 계절 평양상공 비행관광, 매해 8-9월에는 원산 에어쇼 외에 자연 경치, 역사유적 참관 등이 새로 생겨났다.
    그리고 중국 단동으로부터 평양 사이의 일일관광, 열차 관광이 생겼고 역사상 처음으로 북한의 최북단 나선시부터 개성, 판문점을 통과하여 서울로 내려오는 한반도 종단 자전거 관광까지 생겨났다.
    지난 시기 외국 관광회사들에서 북한 관광 상품을 소개할 때 세계에서 마지막 ‘스탈린 국가 체험해 볼 기회’, ‘비합리성, 비이성적인 것이 극치에 이른 북한사회에 대한 신비로움과 궁금증을 풀 기회’ 등으로 관광 상품을 선전하면 북한 외교관들이 즉시 해당 관광회사에 찾아가 항의하거나 해당 회사가 주관하는 관광단은 접수하지 않는 것과 같은 제재를 가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점차 이것을 못 본척하고 묵인하고 있다.
    지금 수많은 서방 관광회사들이 북한의 비이성적인 사회의 신비로움을 관광 상품으로 선전하고 있다.
    관광객을 끌어들여 돈을 벌면 된다는 계산이다.

 

  • 지금까지 닫혀 있던 많은 지역을 관광에 개방하였다.

    북한은 나선시를 개방한 데 이어 신의주, 삼지연 등 국경지역을 대대적으로 개방했다.
    지난 시기에는 녕변 핵시설 때문에 청천강 이북 지역을 평양으로부터 외국인들이 올라가는 것을 불허하였으나, 이제는 평양 상주 외교관들도 북한 외무성에 한주일 전에 각서를 내면 승인을 내주고 있다.
    2013년부터 녕변 핵시설에서 얼마 멀지 않은 평안북도의 약산 동대까지 중국 관광객들에게 개방하였다.

 

  • 관광특별법을 제정, 원산-금강산 국제 관광도시 개발계획, 러시아의 연해주와 나진선봉, 원산을 하나로 있는 관광 및 물류 확대계획 등 장기적인 관광 발전계획을 작성하고 외국투자가들을 유치하기 위한 활동을 벌리고 있다.

 

  • 최근 3-4년 동안 북한은 중국, 영국, 스페인, 스위스 등에서 북한 관광설명회를 열었다.

    김정일 시대 때에는 외국에서 관광설명회를 하겠다고 제기조차 할 수 없었다.
    북한은 2025년까지 원산-금강산 지구를 사계절 국제 관광지로 개발해 한해 1백만 명을 유치할 계획까지 발표했다.
    2013-2015년까지 2억 달러의 비용을 들여 원산갈마 군용비행장을 국제공항으로 개조하고 앞으로 12대의 비행기로 연간 120만 명의 관광객을 수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 북한 내부 관광도 활성화 하고 있다.
    최근 북한내부에서 신흥 부르죠아지인 돈주들이 많이 생기고 부정축재 등으로 부를 모은 부자층이 나오면서 내부 관광수요도 증대하고 있다.

    지난 시기에는 북한주민들이 비행기를 한번 타보려면 외국으로 갈 때 국제항로를 이용하는 방법밖에 없었으나 지금은 평양-삼지연, 청진, 함흥, 어대진, 신의주 등으로 내륙 민항기들을 운영하고 있다.
    일반 주민들도 시민증을 보이고 미국달러만 내면 비행기로 국내여행도 가능하게 되었다.
    평양에서 원산까지 120달러를 내고 비행기로 45분이면 갈 수 있다.

 

– 김정은은 집권 초기인 2012년 초부터 2013년 3월 핵경제병진노선 채택까지 1년 동안 구체적인 경제방향은 제시하지 못했으나 실용주의 측면을 많이 강조했다.

 

  • 성과를 내기 어려운 중화학공업에 대한 관심은 줄이고 대신 투자규모가 적으면서 과시적인 성과를 보여줄 수 있는 건설, 수산업, 경공업과 농업에 집중. 즉, 성과 위주의 전시성대상에 집중했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은은 2012년 초기에는 CNC화와 같은 기계 산업 중시로 나가는 듯이 보였으나 인차 콤퓨터, 핸드폰, 태블릿 등 중국 부품을 들여다 조립하는 공장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2012년부터 2013년 한해 사이에는 구체적인 정책이 제시된 것 없이 갈팡질팡 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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