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황장엽선생님을 추모하여

고 황장엽선생님을 추모하여

오는 10월 10일은 우리 민족의 현대사와 남북의 통일역사에서 한 획을 그으신 위대한 철학자, 위대한 애국자, 위대한 통일투사였던 황장엽선생님께서 세상을 떠나신지 8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저는 북한에 있을 때 당시 북한노동당 국제비서로 있었던 황장엽선생님의 영어통역으로 활동했습니다.

북한에서는 통역이 간부들과 외국대표단이 동석식사를 할 때 식사를 못하고 굶더라도 간부의 통역을 완벽하게 보장해야 합니다.

사실 동석식사에 참가하여 남들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꾹 참고 옆에서 통역할 떄면 입안에서는 군침이 흐르고 배에서는 꾸르룩 꾸르룩 소리가 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황장엽선생님은 언제나 통역들이 식사를 충분히 할수 있게 외국대표단에게 먼저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자고 양해를 구하시고 통역들 보고 먼저 식사를 하라고 하셨으며 통역이 충분히 식사를 했는가를 확인하신 다음 대화를 시작하시였습니다.

당시 선생님의 이러한 미덕 때문에 통역들이 선생님을 무척 존경하였습니다.

황장엽선생님의 아들 황경모는 인물 잘나고 실력이 뛰여났으며 태권도를 잘 해 1980년대 말 평양시 처녀들속에서 무척 인기가 있었습니다.

결국 장성택의 누이의 딸과 결혼하였습니다.

그런데 황선생님이 귀순하신후 황장엽선생님의 모든 가족들은 다 수용소로 끌리워 갔습니다.

다행히 선생님의 며느리인 전혜영만 장성택이 나서서 겨우 목숨을 건졌으나 2013년 12월 장성택이 처형될 때 장성택 친척 전부가 처형됨으로써 전혜영마저 없어졌습니다.

황장엽선생님의 사위 박철은 저와 국제관계대학 동창이였으며 북한외무성 참사실에서 글을 제일 잘 쓰는 전략가였습니다.

황장엽선생님이 한국으로 귀순하신후 박철은 외무성에서 쫓겨났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자신께서 한국으로 귀순하시면 온 가족이 어떤 운명에 처할것인가를 다 알고 계시였지만 이 나라의 통일을 위하여 단연코 한국으로 귀순하시여 북한체제를 크게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한국에 오시여 13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우리 민족의 통일을 위해 불굴의 투쟁을 벌리시였지만 끝내 통일을 보시지 못하시였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영전앞에서 맹세합니다.

선생님께서 그토록 바라던 북한의 민주화와 북한주민들의 인권해방 그리고 민족적 숙원인 조국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북한에서 김씨일가의 세습독재정권을 반드시 허물어 버리겠습니다.

그 누구도 북한민주화와 북한주민들을 노예의 처지에서 해방하기 위한 저의 투쟁을 멈추어 세울수 없습니다.

황장엽 선생님

통일은 저의 세대에 맡겨 놓으시고 이제는 부디 편히 주무십시오.

2018년 10월 7일

태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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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houghts on “고 황장엽선생님을 추모하여”

  1. 글에 진정성이 묻어 나오는 좋은 글입니다. 태영호 선생께서도 건강하십시요.

  2. 진정 감동입니다

    공사님께서는 이 위대했던 자유대한민국의
    대통령감이십니다

    북한동포들은 반드시
    최악의 독재권력의 압제로부터해방되어야합니다

    우리 자유민주세력은 막강합니다
    결국 많은 좌파세력들은 몰락할 것입니다

    자유주의의 깊은 가치를 통감하고서 전향한
    좌파세력들이 늘고 있습니다

    자유대한 나의 조국은 길이 빛날 것이며
    자유통일이 실현되는 그날까지
    그래서 북한동포들이 해방되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해 매진하여야 할 것입니다

  3. 진리는 반드시 승리하며, 역사가 증인입니다. 태 선생님과 함께 걸으며 응원하는, 보이지 않는 많은 선한 세력이 있습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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