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동행 아카데미]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를 대하는 북한 당국과 주민의 차이

1. 서론

 

– 2000년. 세 번째 밀레니엄 시대가 다가옴에 따라 세계는 큰 기대감과 불안감 등의 다양한 감정들로 뒤섞여 있었다. 1, 2차 세계대전도 끝이 나고 냉전 시대 역시 끝난 지 10년이 지나 평화의 새천년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 관심 있는 화두는 평화, 다양성, 세계화, 지구촌 등의 세계인들이 하나가 되기 위한 준비였다. 고난의 행군을 보내며 큰 고통과 어려움을 겪었던 북한도 새 시대를 맞이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세계에 대한 관점이 크게 변하게 되었는데 이에 따라 북한 당국과 주민들 사이에서는 약간의 괴리가 생기게 되었다.

 

 

2. 당국의 대응방안

– 자력갱생

  • 세계적으로 2000년대부터 세계화의 물결이 흐르기 시작했다. 다른 국가들과의 활발한 교류로 산업에서는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효율성과 경제성이 세계의 국가들을 더욱 빠르게 발전시킨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완전히 흐름을 거슬렀다.

 

  • 어찌하여 그랬을까? 북한은 더 자력갱생 구호를 더 높이 들 수밖에 없었다. 세계화 흐름에 합류하려면 나라를 더 개방하고 다른 나라하고 교류가 부단히 진행될 때만이 이게 가능한데 이런 교류가 진행되면 북한은 결국 붕괴되기 때문이었다. 북한은 다른 나라들과는 다르게 거꾸로 돌아서서 자력갱생의 구호를 들고 모든 것을 자국에서 자체로 다 생산한다고 하였다. 선택과 집중이 되지 않은 산업과 경제는 점점 더 힘들어지게 되었다. 북한에서 생산한 물건을 누가 사겠는가? 질이 현저히 떨어지는데 말이다. 결국 2000년대 들어서면서 북한과 한국 사이에 격차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되었다.

 

  • 2000년대 들어서면서 북한에서는 아주 특이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북한에 한류가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 전에는 못 들어가던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가 대대적으로 밀수되어 북한에 유입됐다. 북한에서 밀수는 위험한 작업이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밀수되어 들어갔다는 거는 수요가 그만큼 컸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면 왜 2000년 초반 북한에서는 점점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보려는 분위기가 퍼졌을까?

 

  • 그 이유는 고난의 행군이다. ‘고난의 행군’이라는 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대기근으로 북한 주민들은 심각한 상황을 몸소 체험하게 된다. 사람들이 힘들고 현실이 어두워지면 다른 사회, 즉 다른 나라하고 비교를 하게 된다. 잘 살고 있는 다른 나라를 보면 비관에 빠지게 되고, ‘우리는 왜 이렇게 못 사는가?’라는 의문과 지금까지 생각도 안 해봤던 ‘과연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이런 호기심과 궁금증이 더 늘어나기 시작한다.

 

  • 다른 한 이유는 한국에서도 경험해 봤듯이, 경제 위기가 생기거나 나라가 어려워지면 영화관에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IMF 때에 한국 역시도 나라가 어려워지면서 취업이 잘 안되고 실업자가 많이 늘어났지만 영화관에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일종의 현실도피이다. 아주 재미난 현상이지만 사람의 생활이 힘들어지고 나라의 경제 위기가 오면 영화업은 더 잘 된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게 결부 되면서 한국 영화가 2000년대부터 북한에 대대적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 자력갱생의 구호를 높이 쳐들고 있던 북한은 더욱 더 정보 유입에 대한 단속과 처벌을 강화하였다. 하지만 이미 가세가 기울대로 기운 북한 정권의 역량 상, 모든 것을 컨트롤하기는 어려웠고 그럴 여건도 되지 않았다. 게다가 한 번 한류를 접해본 북한 주민들은 못 살 줄로만 알았던 한국의 실상을 알게 되었고, 같은 말과 역사를 가진 한민족으로써 이렇게나 차이가 나버린 사실을 깨닫고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그리하여 북한 당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류 콘텐츠는 지속적으로 유입되어 많은 북한 주민들이 접할 수 있게 되었다.

 

3. 주민들의 대응방안

– 장마당

  • 90년대에 나라가 어려워지기 시작하면서 사회주의 체계 배급 체계가 무너져 버렸다. 당국은 장마당에 나가서 장사를 하지 말라고 했지만 사람들 사이에서는 장마당이 계속 생겨났다.

 

  • 제일 처음 생긴 장마당은 ‘메뚜기 장마당’이라는 초기 형태의 시장이었다. 북한에서는 ‘메뚜기 장’이라고 했다. ‘메뚜기 장’의 특징은 이제처럼 말 자체로 메뚜기이다. 안전원만 나타나면 금방 뛸 수 있는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됐다.
    제일 큰 특징은 자전거가 많이 있었다. 그 다음 두 번째 특징은 짐을 조금밖에 가지고 있지 못했다. 안전원이 온다 하면 금방 배낭을 메고 뛸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동성이 좋은 시장의 특징을 가졌다.

 

  • ‘메뚜기 장’은 2000년대 초에 들어서면서 ‘진드기 장’으로 변모하였다. 물건들을 대거 늘어놓고 판매를 했고 판매자와 구매자가 굉장히 많아졌다. 이동성이 전혀 없는 고정적인 길거리 시장이었다. 당국에서 단속을 하고 있는 중인데 사람들이 어떻게 도망을 치지 않았을까?
    첫째는 너무 사람들이 살기 힘드니까 당국의 통제가 느슨해졌다. 통제하는 놈이나 안전원이나 다 힘들었기 때문이다. ‘나와 있는 사람들 중에 옷 똑바로 입은 사람 하나 없이 저리 힘들게 사는데 저거까지 우리가 뺏겠느냐?’ 는 생각이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통제도 느슨해지고 결국은 단속해야 될 사람과 장사꾼 사이에 일정한 의전이 형성이 되기 시작하였다. 그 지역 담당 보안서에 있는 안전원들은 장사 행위를 허용해주고 돈을 받아 챙겼다.

 

  • 마지막으로 ‘진드기 장’은 현재의 장마당으로 진화하였다. 장마당의 경우 판매하는 장소에 대한 시설과 판매할 여건이 진드기 장보다는 크게 나아졌다. 무엇보다도 뚜렷하게 보이는 장마당의 특징은 주민들에게 장세를 받았다는 것이다.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이 모두 장마당으로 오기 때문에 장마당에서는 사유 재산을 가질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장마당에 나가서 장에 앉는다는 거는 대단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단 장에만 앉는다고 하면 집안이 먹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모든 사람들에게 장사할 권한을 주지 않았다. 세를 내고 장사할 권한을 가진 주민들에게는 유니폼을 주어서 구분하였다.

 

  • 현실적으로 배급이 끊긴 북한 사회에서 장마당을 이용하지 않고는 먹고 살아가기가 어려워졌다. 따라서 허가 받지 못한 장사꾼들이 많아졌다. 장마당 입구에 가면 허가는 못 받았지만 물건을 딱 들고 서 있다가 장마당 통제꾼들이 보지 않을 때에 몰래 흥정을 하며 물건을 파는 장사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렇게 장세를 안 내는 사람들과 장세를 내는 사람들은 구별하자니까, 장세를 낸 사람들에게 복장을 입혀야 했다.

 

 

 

4. 결론

– 당국과 주민들의 시각 차이

  • 북한 주민들은 장마당에 나가면서 소비자들은 가격 비교를 통해서 흥정을 하고, 판매자들은 가격 경쟁을 통해서 더 팔기 위한 전략을 고민하게 된다. 비교와 경쟁을 통해 자연스럽게 경제 원리를 체득하였고 더 나은 것을 선택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그 동안 모아둔 자본으로 더 큰 자본을 벌기 위해서 유통업을 택한다든지 독과점을 이용하여 물품의 시세 차익이나 환차익을 만들어내었다.

 

  • 어쩌면 인간의 본성과도 같은 비교하는 시각을 갖게 되자 자신의 나라에 대한 상황도 다른 외부의 상황과 비교해보게 되었다. 더 이상 선전과 사상 강화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리하여 고난의 행군 시기에 벌어졌던 생존을 위한 중국으로의 대량 탈북은 2000년대를 지나며 더 나은 삶을 추구하기 위한 탈북으로 변화되었다. 새로운 사회로의 정착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그럼에도 도전을 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 반면 북한 당국에서는 항상 같은 패턴을 반복 했다. 경제상황이 힘들어지고 돈 버는 사람과 못 버는 사람의 격차가 생겼다. 외부에서는 한국 영화와 다양한 비교 정보가 들어오게 되었다. 이럴 때는 김일성이든 김정일이든 김정은이든 한 가지 방법을 고수했다. 밑에 사람들 꼼짝 못하게 눌러 놓고 이 시스템을 그대로 끌고 나가는 방법. 충격적인 사건을 하나 만드는 것이다. 위기의 시기마다 이런 사건들이 있었지만 90년대 말에는 ‘심화조 사건’을 벌였다.

 

  • 그렇기에 북한에서 오래 살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는 무언가 터질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행실을 조심해야 한다는 점을 몸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의 정보 유입 차단에도 불구하고 현재도 북한 주민들의 수요는 여전히 높다. 그리하여 외부 정보는 끊임없이 유입되고 있고 북한 주민들이 생각은 이제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다. 자유와 자아실현이라는 더 나은 가치에 대해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역시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아야겠다.

 

2 thoughts on “[남북동행 아카데미]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를 대하는 북한 당국과 주민의 차이”

  1. 심화조 사건 같은 경우 북한의 본질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내부에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2. 미국의 대중문화 터키드라마 인도 발리우드 한국 케이팝같은 글로벌대중문화를 중국이나 라오스 쿠바 같은 아직도 남아있는 사회주의 국가나 시리아 수단 사우디아라비아같은 독재국가들은 어느정도 검열은 있겠으나 유입되는 자체를 막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아예 폐쇄적이게도 이런 대중문화를 받아들이는데 막을려고 하는군요 북한이 어떤 조건때문에 저런 나라들과는 달리 해외대중문화 유입과 열풍을 허용하지 않고 차단하려는 이유가 먼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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