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태영호 “北, 가짜 교회 세웠더니 진짜 신자 생겨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으로 활동 중인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는 “북한이 외부에 보여주기 위해 가짜 교회와 성당을 지어놓고 쇼를 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믿음을 가진 이들이 생겨났다”며 “이렇듯 종교의 위력을 깨달은 북한의 노동당이 더 이상 교회와 성당을 짓지 않고 종교를 억압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태영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이 18일 국민일보 초청특강에서 북한의 종교 실상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태 전 공사는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에서 열린 국민일보 초청강연에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북한의 종교정책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태 전 공사가 대외 강연에서 북한의 종교 현황과 정책 등에 대해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그는 “북한 사회는 수령을 신적 존재로 만들어놓고 국가와 당이 주민에게 필요한 물질적 요구를 모두 들어주는 조건에서만 유지가 가능하다”며 “김일성 주석이 통치했던 1990년대 초까지는 복지제도를 통해 욕구를 충족시켜 그것이 가능했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이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들어선 지금은 당과 수령이 내 생계를 해결해주리라는 믿음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장마당 등 자본주의 체제가 들어오면서 선택과 경쟁에 눈뜨기 시작한 북한 주민들이 ‘내 운명은 스스로 책임지겠다’고 생각하면서 새로운 믿음을 찾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현재 북한에는 마약, 술에 빠지거나 점쟁이와 무당을 찾아다니는 등 미신 행위가 늘었으며, 종교행위 또한 늘고 있다는 것이다. 태 전 공사는 “신격화는커녕 지도자로서의 정통성과 명분이 부족한 김정은 위원장이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을 통해 신적 존재가 되기 위해 핵개발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태 전 공사는 1970년대 초 김일성 주석이 ‘북한에는 더 이상 종교 문제가 없다’고 선포했지만 80년대 남한의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기독교 세력이 급부상하면서 북한의 종교정책에 변화가 생겼다고 분석했다. 고 문익환 목사, 문규현 신부 등 재야 기독교 세력과 교류하고 이들을 포섭하기 위해 북한에도 종교가 있는 것처럼 교회와 성당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태 전 공사는 봉수교회의 가짜 신자들이 진짜 신앙을 갖게 된 과정, 이후 북한 당국이 다시 종교 억압 정책을 펴게 된 정황 등을 소개했다.

지난해 8월 영국에서 한국으로 망명한 태 전 공사는 1년 정도 공개 활동하는 동안 대다수 한국인들이 통일을 원치 않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소회도 밝혔다. 그는 “한국의 전반적인 정서와 달리 교회만 통일을 위해 기도회도 하고 통일을 갈망하고 있다”면서 “한국교회가 향후 통일과정에서 중요한 거점이 되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체사상 투철한 여성들 믿음 생기자 교회당 주변 감시”
-태영호 前 공사가 말하는 북한 종교현황과 종교정책-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는 18일 국민일보 초청 강연에서 북한의 종교 현황에 대해 상세하게 소개하면서 북녘 땅에서도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고 있음을 증언했다. 현재 북한 당국은 봉수교회, 장충성당 등 일부 종교시설의 존재와 더불어 가정예배소도 500개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북한의 교인들이 진짜 신자인지 아닌지, 가정교회가 진짜 있는지 등을 두고 논란을 벌여온 한국교회에 태 전 공사의 발언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봉수교회엔 진짜 신자가 있다”
태 전 공사는 “1960년대말~70년대 김일성 주석이 배급제로 배고픔을 해소하고 복지제도를 통해 무상교육, 무상치료 등을 해소하면서 북한에 종교는 필요 없다고 선포했다”고 말했다. 먹고 사는 데 큰 문제가 없다보니 종교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던 북한 노동당이 1980년대 말 봉수교회와 장충성당을 짓기 시작하자 내부에서도 의아해하는 반응이 나왔다. 태 전 공사는 “항상 한국을 적화통일하고 남한 내부의 국론분열을 도모하던 북한이 1980년대 한국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기독교계가 부상하기 시작하자, 이들을 포섭대상으로 삼고자 종교시설을 짓기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 생겼다. 북한에도 종교의 자유가 있음을 보여주고자 교회를 지었지만 거짓으로 찬양하고 예배를 드리던 이들이 차차 진짜 믿음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동안 조선그리스도교연맹 등 북한의 기독교 관계자들은 방북한 한국의 목회자들에게 북한의 신자들은 부모 세대로부터 신앙을 물려받았다고 소개하곤 했다.

태 전 공사는 “이는 사실이 아니며 실제로는 북한에서도 최고 빨갱이, 주체사상이 투철한 핵심 가문의 여성들을 선발해서 교회당에 모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종교도 없는데 당에서 나오라니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이들을 관리하기 위해 출석을 따졌다.

하지만 몇 달 만에 출석부는 사라졌다. 믿음이 생기자 예배 시작 전에 먼저 교회에 나오고, 조금만 아파도 핑계를 대며 안 나오던 이들이 고열에도 교회에 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의 자발적인 모습을 보며 당은 주민들에게 진짜 신앙이 생겼음을 간파했다.

북한 당국은 곧 봉수교회 주변 아파트에 망원경을 설치해놓고 교회당 주변을 감시했다. 태 전 공사는 “승인받은 사람만 교회를 다닐 수 있는데 예배시간이 되자 교회 옆길로 시간을 맞춰 지나가는 사람들이 생겼다”며 “여전히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든 기도소리를 듣고 싶어 예배당 근처로 이끌려 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에 진짜 가정예배처도 있다”
태 전 공사는 북한이 바티칸 교황청에 천주교 신자를 데리고 갔던 비화도 공개했다. 1991년 소련 붕괴로 외교적 고립에 직면한 김일성 주석은 당시 로마 바티칸의 교황과 접촉해서 북한의 고립상황을 해결하고자 했다. 1992년 교황을 북한에 초청하기 위한 외교부 상무조(TF)가 조직됐고, 태 전 공사도 상무조의 구성원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북한 평양의 봉수교회에서 교인들이 예비 드리는 모습. 국민일보DB

당시 교황청은 북한 당국에 진짜 가톨릭 신자가 있다면 현지에 데려올 것을 요구했다. 북한 노동당 가톨릭교회연맹 관계자들은 수소문했고, 한 노파를 찾아냈다. 성당도 없이 어떻게 믿음을 유지해왔는지 확인차 방문하자 노파는 그들을 집 뒷울(뒷담)로 데려갔다. 태 전 공사는 “그 순간 당 관계자들은 몸이 찌릿해지는 것을 느끼며 자기도 모르게 여기가 진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장소임을 직감적으로 알았다”고 했다.

이어 태 전 공사는 “이 여성이 바티칸에 가서 북한에 가정예배소와 종교의 자유가 있음을 이야기한 뒤 돌아와서 ‘수십 년간 혼자서 기도를 올렸더니 하나님이 어린 양을 불러주셨다. 나는 이로써 하나님이 있다는 걸 확신하게 됐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를 보고 북한 노동당이 종교는 정말 대단해서 위협과 공포와 죽음으로 믿음을 뺏는 건 안 된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한때 북한 당국은 원산, 강계 등 지방 도시에 종교시설을 짓는 것도 검토했다고 한다. 태 전 공사는 “지방에 교회나 성당을 지었다가 공산정권의 오랜 탄압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던 신자들이 ‘당에서 그렇게 없애놓고 이제 와서 교회를 짓다니, 하나님의 뜻이구나’라고 생각하며 신앙을 굳힐까 걱정해 더 이상 짓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의 시스템이 악화될수록 종교 활동은 더욱 강화될 것이고, 종교는 한번 퍼지면 걷어낼 수 없다는 것을 북한 당국이 알고 있기 때문에 종교문제에 예민하게 대응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태 전 공사는 “북한에선 통일해서 잘 살고 싶어 하는 주민의 열망이 달아오르는 반면, 한국에서는 통일을 회피하고 분단 고착화를 말해 놀랐다”며 통일에 대한 남북간 온도차도 거론했다. 그는 “특히 대학생 강연 때 보면 한국의 젊은이들은 통일이 되면 취업하기 더 힘들어진다며 통일을 반대하더라”면서 “최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귀순병사 사례를 보면서도 젊은이들은 기생충 많은 북한 주민들이 남한으로 내려올 것을 걱정하더라”고 지적했다. 그는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통일을 교육하지 않는데 한국교회만 유일하게 한반도 통일을 원하고 기도하고 있다”면서 한국교회가 남북통일 과정에서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해줄 것을 당부했다.

출처: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