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집권 이후 과학기술 우대 정책 및 시사점

2017년 11월 대북정책전문가들과의 세미나 발제문

 

  1. 김일성, 김정일 시대의 인텔리 정책

 

1.1. 맑스-레닌주의 이론에서 인텔리 정책

 

맑스-레닌주의 이론에서는 인텔리를 혁명의 동력으로가 아니라 동반자로 규정했다.

실례로 레닌은 ‘노동자, 농민, 병사, 소베트론’을 제기하면서 인텔리는 노동계급이 이용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했다.

러시아 작가 톨스토이가 쓴 소설 ‘고난의 길’을 읽어 보면 이전 소련 공산당의 인텔리 정책을 알 수 있는데 귀족 인텔리가 공산 정권하에서 공산주의자들의 ‘동반자’로 될 수 있다고 서술되어 있다.

 

1.2. 김일성의 인텔리 정책

 

김일성은 인텔리는 로동 계급의 동반자가 아니라 혁명의 동력. 즉, 노동자, 농민과 함께 대등한 지위에서 혁명의 동력으로 된다고 규정했다.

김일성은 북한 노동당 마크에 세계에서 유일하게 마치와 낫 사이에 붓(펜)을 등장시키는 방법으로 인텔리가 혁명의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김일성이 인텔리 정책을 특별히 중시한 이유는 1945년 8월 15일 해방 후 북한에 소련군이 진주하자 북한의 과학자, 기술자들이 남쪽으로 내려갈 경향을 보인 것과 관련된다.

8.15 해방 당시 남과 북의 인텔리 구성 분포를 보면 남한에 있는 인텔리 대부분은 좌익 경향이 강한 사회학 인텔리들이었고 북한에는 일제의 산업에 복무했던 산업 부문의 과학자, 기술자들이 인텔리 계층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북에서 산업부 면의 기술자들이 남쪽으로 내려간다면 공산당은 북한 경제를 운영할 수 없었다.

결국 김일성은 인텔리도 로동계급과 같은 공산당 편이라는 이론을 제기하고 친일분자 숙청에서 과학자, 기술자들은 제외하였으며 국가행정기관 등에 등용하고 일정하게 우대했다.

 

1.3. 김정일의 인텔리 정책

김정일의 인텔리 정책은 기본 상 김일성의 인텔리 정책을 계승하였으나 북한 공산체제가 1960년대 중엽까지 대량의 인텔리들을 양성한 실정에서 해방 전 일제에 복무했던 인텔리들의 지위와 영향력이 점차 약화되어 가고 있던 시대적 상황과 북한 체제를 세습 체제로 이행시켜야 했던 필요성으로부터 일정한 차이점이 있다.

김정일은 김일성을 내세워 1967년 5월 25일 당 전원회의에서 일명 ‘5.25교시’를 발표하게 한다.

쉽게 말하면 이전 인텔리들을 배척하는 계급투쟁론을 들고나온 것이다.

이때부터 과학자, 기술자 등 인텔리가 북한의 사회발전에서 상당한 임무를 수행함에도 불구하고 당, 공안 기관 일꾼들이 인텔리들을 감독, 통제하는 시스템이 구축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1980년대 말까지는 북한에서 사회주의 복지 시스템이 작동했으므로 인텔리들에 대한 경제적 대우는 노동자나 농민에 비해 좋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1990년대 ‘고난의 행군’ 과정을 거치면서 사회 복지 시스템 붕괴하자 제일 큰 타격 받은 것이 과학자들과 교원 등 인텔리 계층이었다.

김정일은 북한 주민들에게 ‘자력갱생’의 구호를 들고 생계를 다 자체로 유지하라고 하면서도 대학이나 과학 연구기관들에서 종사하는 인텔리들이 자기 직장을 떠나지 말고 본업에 충실해지길 요구했다.

결국 1990년대 말부터 사회적으로 제일 불만이 많은 층은 핵심계층의 과학자 기술자들이 되기 시작했다.

 

2. 김정은 시대의 인텔리 정책의 특징

2.1. 고위층 숙청정치에 대한 북한 사회의 이완화 대안으로의 인텔리 우대정책 개시

 

김정은 체제의 집권 공고화는 필연코 고위층에 대한 숙청을 떠나서는 불가능했다.

김정은은 장성택 숙청 등으로 초래된 북한 사회의 불안과 엘리트층의 불만을 인텔리 우대정책으로 이완화하려고 했다.

김정은은 일반 주민들에게는 ‘애민정치’로, 인텔리들에게는 ‘우대정책’으로 다가가면서 자기는 인민들을 행복하게 살게 해 주려고 애쓰는데 상층에 장성택과 같은 나쁜 놈들이 있어 인민들이 힘들게 살고 있다는 인식을 북한 사회에 유포시켰다.

 

2.2. 아파트 건설 등으로 인텔리들에 대한 대우도 개선

 

김정은은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은하 위성 과학자거리, 미래 과학자거리, 과학 기술 전당, 과학자 휴양소,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 교원들의 주택, 미래상점, 여명거리 건설 등을 통해 북한에서 과학자, 교원들의 대우를 많이 개선해 주었다.

 

2.3. 파격적인 조치로 인텔리들의 환심을 사고 자기의 과학중시 정책을 홍보

김정은은 평양음악대학건물을 빼앗아 생물공학 분원에 주었으며 쑥섬에 건설 중이던 실내축구 경기장 건설을 중단시키고 과학기술 전당을 건설하도록 했다.

평양시 중구역에 당 통일전선부에서 건설했던 외화벌이 회사 건물을 빼앗아 평양의학대학 전자도서관을 꾸리도록 해주어 사람들 속에서 쓸데없던 극장만 계속 짓던 김정일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반영이 제기되게 하였다.

대학생들의 학업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아리랑 공연을 중단시켰다.

비록 제한적이기는 하나 국가과학원, 과학기술전당, 김책공업종합대학, 김일성종합대학에 외국과 연결된 인터넷 열람체계를 신설하였다.

2013년에는 해외 근무 인원들이 대학생 자녀들을 데리고 나가도록 함으로써 외국대학들에서 고급 인력을 양성하려고 하였다.

고급 IT 인력들의 해외 진출과 수익사업을 장려하고 이를 통한 통치자금 확보도 중시하였다.

 

2.4. 일부 구조적인 개혁도 추진

2. 4. 1. 집권 초기부터 ‘지식경제’ 건설이라는 새로운 과업을 제시하고 과학기술 체제 개편과 첨단산업 육성, 지식보급망도 확대

김정일이 인민 경제의 주체화를 내세우면서 함흥 비날론 공장 현대화, 석탄 가스화 실현, 산소 분리기 방법에 의한 주체철 완성과 같은 투입 규모가 큰 대형 기간산업 갱신을 강조한 데 비하면 김정은은 현실 문제 타개와 투자 대 효과성이 빨리 나타날 수 있는 현실적인 분야를 중시했다.

김정은은 집권 초기인 2012년 12월 국가과학원 창립 60주년을 맞으면서 산하 연구개발 체계를 첨단기술과 핵심기술 위주로 재편하도록 했으며 국가 우주개발국을 설립하고 국제적인 교류를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2013~2017년까지의 제4차 과학기술 발전 5개년 계획 기간을 설정하고 먹는 문제와 에너지 문제, 첨단기술 육성 분야를 추켜세우라고 했다.

실천적으로는 산업 전반의 CNC (Computerized Numerical Control) 화를 강화하고 정보통신망 구축과 IT 산업 육성, 전자 상거래도 추진했다.

과학 기술 전당 신축과 내부 인트라넷 활용을 통해 전국적인 과학 기술, 지식 보급과 사이버교육, 원격 화상 진료 등도 추진했다.

김정은은 이러한 구조적인 개편을 통해 내가 비록 고모부인 장성택 등을 숙청했으나 그것은 나라의 근대화를 위한 조치였으며 김정은은 국제적인 추세도 아는 합리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과학을 중시하고 과학자들을 잘 대우한다는 인상을 확산시키려 하였다.

 

2.4.2. 국방 분야에서 투자의 집중성과 선택성을 강화하고 핵과 미사일 분야에 투자를 집중

 

3. 과학자들의 김정은 과학기술 우대정책에 대한 평가

 

3.1. 김정은의 주택 배정 등 우대 정책을 환영하면서도 평시에 편히 살 수 있도록 생활 환경을 개선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3.2. 그리고 과학 분야에 대한 투자와 외국과의 교류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김정은은 외국과의 교류확대를 요구하는 과학자들의 요구를 반영하여 2012~2013년 사이에 해외에 나가는 모든 대표단에 과학자, 기술자 한 명씩 무조건 포함하는 대책을 취했으나 자금 사정으로 모든 기관에서 반대해 나서자 1년 만에 거두어들였다.

 

4. 김정은의 과학기술중시 정책의 시사점

4.1. 김정은의 과학기술중시 정책은 북한 사회에서 소외 되고 있던 교원, 과학자들에게 일정한 심리적 만족을 주고 국제적인 추이와도 일치한다는 점에서는 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으나 투자와 이익 산출의 선순환 구조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지속 가능성이 취약하다.

4.2. 핵과 미사일 개발 질주 정책으로 그 분야에서는 진전이 이루어졌으나 오히려 그로 인한 국제적 고립과 제재만 심화되어 과학기술 분야에서의 대외적 개방과 협력이 더욱 어려워져 다른 분야의 과학자들 속에서 불만이 상승하고 있다.

4.3. 김정은의 지식경제 정책에도 불구하고 제재 국면이 지속되는 속에서 기간공업이 계속 위축되는 것은 피할 수 없고 결국 4차 국가 과학기술 발전 5개년 계획도 실패를 면치 못하게 되었다.

 

김정은이 2017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언급한 2016년 과학기술 분야에서 이룩한 성과는 국방과학 분야밖에 없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언급한 과학기술 분야 성과를 실례로 든다면 ‘첫 수소탄 시험과 각의한 공격 수단들의 시험 발사, 핵탄두 폭발 시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으며 첨단 무장 장비 연구 개발 사업이 활발해지고 대륙간 탄도 로케트 시험 발사 준비 사업이 마감 단계에’, ‘지구 관측 위성 광명성 4호를 성과적으로 발사한 데 이어 새형의 정지 위성 운반 로케트용 대출력 발동기 지상 분출 시험에서 성공’ 등뿐이다.

김정은이 2017년 신년사에서 언급한 2017년 과학기술 목표를 보면 ‘원료와 연료 설비 국산화에 중심을 두고 공장 기업소들의 현대화와 생산 정상화에서 나서는 과학 기술적 문제들을 해결’한다는 것인데 결국 2013~2017년까지 해결한다고 했던 국가 과학기술 발전 5개년 계획의 4번째 단계 과업인 에너지 문제 해결, 공업의 주체화, 현대화, 먹는 문제 해결, 첨단기술 비중 재고, 기초과학  발전에서 무엇을 해 놓았다고 자랑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1998년~2017년까지 단계적으로 해결한다는 단계별 국가 과학기술 발전 5개년 계획은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4.4. 앞으로 북한이 해외 기술 인력 수출로 방향을 전환할 가능성이 크나 많은 인텔리들이 해외에 나와 보면 동요 가능성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4.5. 김정은의 IT산업 장려정책은 북한 내에 선진적인 장비를 확산시켜 외부 정보를 신속이 유입, 전파 할 수 있는 조건을 더욱 용이하게 만들고 있다.

2013년 북한은 갑자기 Window XP 후에 나온 체계는 사용을 금지하는 조치를 강행했고 핸드폰도 수시로 검사하고 Sd 카드 검사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모든 국가기관에서 오직 북한이 개발한 ‘붉은 별 체계’만 이용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북한에서 컴퓨터가 대대적으로 확산하고 있어 지난시기 당, 군대 기관 간부들의 사무실에 컴퓨터 있으면 이상하게 생각되었으나 이제는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다시 말하여 사무실에서도 한국 콘텐츠를 보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북한의 기밀 자료들을 USB로 대량 반출할 가능성도 확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