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관광 장려 정책과 핵미사일 개발이 북한 경제 전망이 미칠 영향 분석

2017년 7월 한국 관광 업체 대표들과의 세미나에서 한 토론문

  1. 서론

 

현재 동북아시아에서는 정치 군사적 대립 구도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이익을 위해 서로 협력하고 연합하는 새로운 형태의 질서가 재편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관광업은 지역 간 인적 교류와 협력을 증대시키는 가장 큰 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맞추어 김정은 시대의 북한도 관광을 악화된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여기면서 각종 관광 자원을 개발하고, 관광 시설을 확충하며, 관련 기구들을 설치하는 등 관광 진흥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

김정은 시대에 와서 달라진 북한 관광 정책과 핵미사일 개발 정책이 관광업을 비롯한 북한 경제 전망에 미칠 영향 관계 등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2. 관광업에 대해 김씨 일가의 견해

 

김일성으로부터 김정일, 김정일로 이어지는 김씨 일가의 3대 세습 통치 기간 김씨 일가는 북한의 정치 경제 군사 등 모든 정책에서 김일성의 주체사상에 기초한 자력갱생의 정책을 기본상 견지하는 방향을 유지했으나 관광 정책에서는 3대 사이에 일정한 차이점을 보여왔다.

 

2.1. 관광업에 대해 김일성과 김정일의 상충하는 견해

 

  • 북한에서 관광업은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으나 당시는 북한과 동유럽 사회주의 나라들 사이에 진행되던 당 및 사회단체 관광단, 재일동포 조국 방문단 등에 귀착되었다.
  • 그러나 1984년 동유럽 사회주의 나라들을 방문했던 김일성은 자기가 마지막으로 동유럽을 방문했던 때인 1950년대에 비해 알아보기 힘든 정도로 발전한 현실을 보고 놀랐다.
    평양으로 돌아와 당 정치국 회의를 소집하고 북한 경제를 발전시킬 대책을 토의했으며 그중 하나가 관광을 대대적으로 발전시켜 외화를 벌자는 내용이었다.

당 정치국 회의 결정에 따라 1986년 북한에서 처음으로 국가적으로 관광업을 통일적으로 틀어쥐고 나갈 국가 관광 총국이 설립되었다.

초대 국가 관광 총국장으로 외무성 국장으로 있던 전 스웨덴 대사 전기갑이 임명되었다.

  • 김일성의 완력에 의해 관광업이 활기를 띨 것 같았으나 사실 물밑에서는 김정일의 제동 장치가 동작하고 있었다.

사회주의 제도 수호에서 물질적인 측면보다는 주민들의 의식 통제를 중시하는 ‘사상론’을 주장하고 있던 김정일은 관광업을 발전시키더라도 ‘모기장은 더욱 든든히 쳐야 한다.’는 ‘모기장론’을 들고 나왔다.

1980년대 말에는 당과 국가의 명맥을 김정일이 틀어쥐고 있었으므로 김일성의 뜻대로 관광업이 진척될 수가 없었다.

김정일은 당 정치국 회의에서 관광업 발전을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강구한다는 결정이 채택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적으로는 관광객 비자 발급 시 관광 총국-외무성-국가보위부-외무성-관광 총국 검토체계를 만들어 놓고 매 관광객의 신분을 철저히 조사하여 문제가 없을 때만 관광 사증을 발급하는 체계를 세울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관광객들을 북한 주민과 철저히 격리하며 관광 내용도 철저히 체제 홍보에 집중할 것을 요구했다.

김정일이 겉으로 말하는 것과 속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당시 김영남 외교부장 등은 김정일이 관광을 활성화하라고 말하고 있으나 속으로는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김정일은 당 정치국 회의 결정서에 국가 관광 총국이 관광 사업 전반을 주도한다는 내용이 반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려 호텔 등 호텔 봉사 망을 관광 총국에 넘겨주는 것을 반대하였다.

 

  • 결국 김일성이 계속 밀어붙였으나 관광업에서 진전이 없었다.
  • 1990년 관광업과 관련한 당 정치국 회의가 다시 열렸다.

회의에서 김일성은 관광업이 부진한 원인을 밝히라고 요구했고 당시 국가 관광 총국장은 김일성 앞에서 차마 김정일이 뒤에서 목을 조르고 있다는 것을 말할 수 없어 관광 총국과 호텔 등 관광 하부 구조가 서로 격리 되어 있는 것을 관광업 부진 원인으로 토론했다.

이 토론을 들은 김일성은 노발대발했다.

김일성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모든 생산 수단은 국가 소유이다, 관광 총국과 봉사 총국이 서로 협동하면 다 해결될 문제인데 관광 총국과 봉사 총국이 하나로 합쳐지지 않아 관광이 부진하다는 것은 남편과 안해(아내)가 돈지갑을 각각 가지고 있어 이혼해야 한다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회의장에서 질타했다.

결국 회의는 관광 총국장을 해임하여 외무성 경제국 연구원으로 내려보내고 경제사업을 좀 안다는 무역성 부상을 관광 총국장으로 임명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그러다가 1990년대 초부터 동유럽에서 공산 체제가 허물어지기 시작하고 1991년에는 이전 소련이 허물어졌다.

  • 김정일은 루마니아에서 챠우쉐스꾸 정권이 허물어진 것이 관광객으로 위장한 미 중앙정보국 요원들이 루마니아에 들어가 폭동을 일으켰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관광업을 잠시 축소할 것을 지시했다.

1994년 김일성이 죽음으로서 김일성은 북한의 관광업 활성화를 보지 못했다.

1990년대 초부터 10여년 동안 북한에서 관광업을 하겠다고 하면 사회주의 제도를 허물어 버리려는 반당 분자로 낙인찍히는 정도였다.

그러나 2000년대 말에 들어서면서 경제 소득이 늘어난 중국 동북 지방에서 북한에 대한 관광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여러 중국 관광 회사들이 연이어 북한을 방문하고 북한이 관광업을 발전시키면 쉽게 돈을 벌 수 있다고 귀 맛 좋은 소리를 계속하였다.

북한 내부에서 다시 관광업을 발전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주장이 서서히 머리를 들기 시작했다.

김정일이 평안북도를 방문할 때 도당 책임 비서에게 평안북도 인민들을 잘살게 할 방도를 내놓으라고 하니 신의주와 약산동대를 관광 지역으로 개방시켜 달라고 하였다.

량강도 삼지연군을 방문하여 군당 책임 비서에서 감자 농사에 필요한 비료를 자체로 해결할 방도를 내놓으라고 하니 삼지연군에서 백두산 관광을 중국과 합작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했다.

부하에게 외화를 벌라고 계속 요구하면서도 관광은 안 된다고 말하기가 난처하였다.

김정일의 이러한 속내를 제일 먼저 알아차린 것이 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담당 비서 김기남이었다.

김기남은 조용히 국립연극단에 지시하여 관광업을 반대하는 내용으로 연극을 하나 만들어보라고 지시하였다.

결국 연극 ‘오늘을 추억하리’가 만들어졌고 2010년 말에 김정일과 김정은의 참가하에 막을 올렸다.

연극은 자그마한 농촌 마을에서 발전소 댐을 건설하자는 여성 관리위원장과 좋은 경치를 이용하여 관광을 발전시키자는 관리 부위원장 사이의 갈등을 묘사한 작품이다.

연극에서는 관광을 자본주의 요소를 퍼뜨리려는 위험한 사상 조류라고 비판하면서 ‘자력갱생’을 주장하는 여성 관리위원장을 긍정 인물로 묘사하였다.

연극 관람 전 기간 김정일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는 장면이 북한 텔레비로 방영되었다.

그 후 이 연극 내용을 가지고 북한 노동당의 모든 조직에서 당 세포 총회가 열리었으며 연극배우들은 평양역 앞 호화 주택을 선물로 받았다.

주택을 배정하는 날 김정일이 아들 김정은을 데리고 직접 연극 주역 배우들의 집을 찾았다.

이것은 관광업에 대한 김정일의 부정적 인식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일화에 지나지 않는다.

 

2.2. 관광업에 대한 김정은의 인식

 

그러나 아버지와는 달리 김정은은 관광업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는 할아버지 김일성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북한에서는 매주 토요일 그 주간에 있는 김정은의 ‘말씀과 당의 방침을 전달하는 토요 정규화 생활’이라는 것을 하는데 2012년 초 김정은이 갓 집권했을 때 그는 북한이 관광업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하였다.

당시 김정은은 미국과 적대 관계에 있는 북한이 외국으로부터 대대적인 투자를 이끌어내기 어려운 상태에서 손쉽게 외화를 벌려면 관광을 발전시켜야 한다면서 관광을 외국인들을 끌여들어 외화를 버는 사업으로만 간주하지 말고 국내 주민들을 위한 국내 관광도 발전시켜야 한다. 전망적으로 북한 주민들도 한 해 5만 명 정도 외국 관광을 떠나는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하였다.

당시 김정은의 이러한 ‘말씀’을 전달받으면서 북한 외무성 외교관들은 속으로 관광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말은 맞지만 젊은 양반이 나가도 너무 나간다. 한 해에 5만 명 이상 관광하도록 허용하면 다 탈북하여 금방 무너질 것이다. 비현실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당시 김정은의 말 속에는 매우 의의 있는 내용도 있었다.

예하면(예를 들면) 관광을 체제 선전 수단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외화벌이를 위한 경제적 수단으로 간주해야 하며 관광 상품도 선전 효과가 있는 대상만 하지 말고 자연, 휴식, 체육, 모험 등 다양화하라는 것 등이다.

이것은 확실히 스위스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면서 관광업의 득실 관계를 면밀히 주시한 사람의 생각인 것이다.

그 후 김정은의 생각 중 상당히 많은 것이 북한 현실에 구현되었다.

 

3. 관광업 장려를 위해 지난 5년 동안 김정은이 취한 조치들

3.1. 김정은의 지시로 2014년부터 복잡한 관광 비자 발급 절차가 간소화되었다.

 

지난시기 외국 관광객이 제기되면 현지 대사관이나 북한 관광 회사에서 해당 대상에 대한 비자 발급 신청서를 외무성 국내 사업국, 국가보위성의 출입국 감독국에 제기하면 보위성에서 내부 컴퓨터의 데이터망을 통해 해당 인물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고 별문제 없으면 해당 대표부에 비자 발급 번호를 주었는데 이 기간이 보통 3~4주 걸렸다.

그러나 지금은 관광객 명단을 제기하면 먼저 승인을 준 후 관광객의 신원 정보 사항을 검열하는 체계로 바뀌었다.

결국 관광 비자 발급이 한 주일 내로 단축되었다.

이것은 북한 체제에서는 ‘혁명’이라고 볼 수 있다.

 

3.2. 국가 관광 총국이 모든 것을 주관하던 독점 체계를 마스고(깨부수고) 여러 관광 회사들이 호상 경쟁하는 체계를 수립한 것이다.

 

2012년 김정은은 국가 관광 총국에 대한 관할권을 내각으로부터 당 중앙위원회 39호실로 옮기고 중앙당에서 관광을 직접 주도하도록 하였으며 국가 관광 총국 외에 청년 동맹은 청소년 관광사, 체육 지도 위원회는 체육 관광사, 통일전선 사업부는 해외동포위원회 등을 통해 저마다 관광객을 유치하여 외화를 벌어 바치도록 하는 경쟁 구조를 수립하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군부까지도 관광업에 나서도록 승인한 것이다.

2013년 3월 김정은은 핵 경제 병진 노선을 채택하면서 이제부터 국가의 재정 원천은 핵과 미사일 개발에 집중하겠으니 일반 병종들은 국가의 지원을 기대하지 말고 군단들과 병종 사령부별로 자체로 생존할 수 있는 방도를 찾으라고 지시하였다.

육군은 농사, 탄광, 광산 개발을, 해군은 바다에서 수산업을 하여 자체로 돈을 벌 수 있었지만 가진 것이라야 낡은 러시아 비행기와 하늘밖에 없는 공군은 속수무책이었다.

그런데 김정은 낡은 비행기가 오히려 돈벌이 수단이 될 수 있다며 공군사령부를 질타하였다.

북한에는 민(간)용 항공도 다 북한군 공군사령부 소속이다.

결국 공군사령부에서 개발한 것이 2016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원산 ‘에어쇼’, 낡은 이전 러시아제 여객기와 헬기로 진행하는 ‘하늘 모험 관광’ 등이다.

내가 2013년 영국에 있을 때 공군사령부에서 세계적으로 낡은 소련 여객기와 헬기를 타보기 희망하는 모험 관광객 모집이 가능한지 가능성 유무를 보고하라는 지시가 와서 영국 주체 관광사 (Juche travellers)와 함께 공모해 보았는데 가격이 비싼데도 한 달 만에 150명이 신청하였다.

미국, 영국 등에서 평생 타보지 못했던 이전 소련 여객기와 헬기들을 타보려는 수요가 상당히 있다는 점을 알고 나는 김정은이 이런 것까지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3.3. 김씨 가문의 우상화 시설에 대한 참관 위주로부터 자연, 문화, 취미로 관광 상품을 다양화한 것이다.

  • 김정일 시대에는 관광 상품이 우상화 홍보 선전에 치중하였다.

외국인들이 북한에 가면 제일 먼저 김일성 동상에 인사하고 그다음부터 혁명사적관, 김일성 생가, 주체사상 탑, 지하철, 등 홍보 수단들만 참관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리고 참관 후 관광객들에게서 좋은 반영을 받아내고 관광을 통해 몇 명을 친북 인사로 만들었는가를 관광 안내들이 주 생활 총화에서 정치적으로 총화하게 만들었다.

 

  • 그러나 최근 북한의 관광 상품이 상당히 다양화되었다.

매년 4월 평양 마라손 대회, 여름에는 태성호 골프 관광, 겨울에는 마식령 스키 관광, 사계절 평양 상공 비행 관광, 매해 8~9월에는 원산 에어쇼 외에 자연 경치, 역사 유적 참관 등이 새로 생겨났다.

그리고 중국 단둥으로부터 평양 사이의 일일 관광, 열차 관광이 생겼고 역사상 처음으로 북한의 최북단 나선시부터 개성, 판문점을 통과하여 서울로 내려오는 한반도 종단 자전거 관광까지 생겨났다.

 

  • 지난시기 외국 관광 회사들에서 북한 관광 상품을 소개할 때 세계에서 마지막 ‘스탈린 국가 체험해 볼 기회 ’, ‘비합리성, 비이성적인 것이 극치에 이른 북한 사회에 대해 신비로움과 궁금증을 풀 기회’ 등으로 관광 상품을 선전하면, 북한 외교관들이 즉시 해당 관광 회사에 찾아가 항의하거나 해당 회사가 주관하는 관광단은 접수하지 않는 것과 같은 제재를 가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점차 이것을 못 본 척하고 묵인하고 있다.

지금 수많은 서방 관광 회사들이 북한의 비이성적인 사회의 신비로움을 관광 상품으로 선전하고 있다.

관광객을 끌어들여 돈을 벌면 된다는 계산이다.

 

3.4. 지금까지 닫혀 있던 많은 지역을 관광에 개방하였다.

 

북한은 나선시를 개방한 데 이어 신의주, 삼지연 등 국경 지역을 대대적으로 개방했다.

지난시기에는 녕변 핵시설 때문에 청천강 이북 지역을 평양으로부터 외국인들이 올라가는 것을 불허하였으나 이제는 평양 상주 외교관들도 북한 외무성에 한 주일 전에 각서를 내면 승인 주고 있다.

2013년부터 녕변 핵시설에서 얼마 멀지 않은 평안북도의 약산동대까지 중국 관광객들에게 개방하였다.

 

3.5. 관광 특별법을 제정, 원산-금강산 국제 관광 도시 개발 계획, 러시아의 연해주와 나진 선봉, 원산을 하나로 있는 관광 및 물류 확대 계획 등 장기적인 관광 발전 계획을 작성하고 외국 투자가들을 유치하기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최근 3~4년 동안 북한은 중국, 영국, 스페인, 스위스 등에서 북한 관광 설명회를 열었다.

김정일 시대 때에는 외국에서 관광 설명회를 하겠다고 제기조차 할 수 없었다.

북한은 2025년까지 원산-금강산 지구를 사계절 국제 관광지로 개발해 한 해 1백만 명을 유치할 계획까지 발표했다.

얼마 전에는 만경봉호가 블라디보스토크항에 입항하여 정기 시험 운항을 진행하였다.

2013~2015년까지 2억 달러의 비용을 들여 원산 갈마 군용 비행장을 국제공항으로 개조하고 앞으로 12대의 비행기로 연간 120만 명의 관광객을 수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최근 북한 내부에서 신흥 부르죠아지인 돈주들이 많이 생기고 부정 축재 등으로 부를 모은 부자층이 나오면서 내부 관광 수요도 증대하고 있다.

지난시기에는 북한 주민들이 비행기를 한 번 타보려면 외국으로 갈 때 국제 항로를 이용하는 방법밖에 없었으나 지금은 평양-삼지연, 청진, 함흥, 어대진, 신의주 등으로 내륙 민항기들을 운영하고 있다.

일반 주민들도 시민증을 보이고 미국 달러만 내면 비행기로 국내 여행도 가능하게 되었다.

평양에서 원산까지 120달러를 내고 비행기로 45분이면 갈 수 있다.

 

4. 북한 관광업 부진의 원인

 

관광업을 발전시키려는 김정은의 시도와 관심에도 불구하고 북한 관광업은 한 해에 30만 명 정도의 관광객밖에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것도 대부분이 중국 관광객이고 서방 사람은 5천 명 미만이다.

 

그 원인은

  • 핵과 미사일 개발로 하여 북한의 관광업에 투자하려는 대상과 방문객 수가 늘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 부족한 인프라, 그중에서도 전기 부족 때문에 관광업을 확대할 수 없으며
  • 주민 통제 약화가 우려되어 국가보위부와 외무성 등 관광객을 통제해야 할 기관들에서 상당히 부담스러워 하고 있기 때문이며
  • 웜비어 사건 등과 같은 외국 관광객에 대한 비우호적인 사건이 자주 일어나고 북한에 대한 이미지가 상당히 나쁘며
  • 관광지 확대에 대한 군부의 반대가 아직도 거세기 때문이다.

 

북한의 관광지에서 가장 수요가 높은 곳이 여름 한 철 동해안 지구이다.

중국 관광 회사들은 나선지대로부터 칠보산, 흥남, 원산까지 동해안을 따라 해안선을 개방할 것을 계속 요구하고 있으나 군부는 나선 시내와 칠보산 일대에 대한 중국 관광객 인원수를 계속 통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원인은 북한의 동해안 방어선이 간첩들에게 다 노출될 수 있다는 주장 때문이다.

 

5. 핵과 미사일 질주를 하면서도 관광 활성화로 나가고 있는 김정은의 전략적 셈법과 향후 북한 경제에 미칠 영향

 

김정은은 집권 후 관광 활성화에 관심이 있으면서도 이와 양립될 수 없는 핵과 미사일 질주에 집착하고 있다.

그러나 관광 활성화를 위한 지난 5년간 김정은의 정책과 추진력을 보면 상당히 모든 것을 치밀하게 계산하면서 나간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5.1. 핵과 미사일 문제만 보아도 김정은의 입장에서 보면 핵과 미사일 개발을 완성하여 핵 실전 배치를 끝내는 것이 방대한 군비를 평화적인 건설에 돌려 북한 경제 회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인 것이다.

현재 북한의 경제 형편은 말이 아니며 더욱이 북한 체제를 흔들고 있는 것은 장마당이라는 자본주의 요소의 확대이다.

북한의 국영 경제가 돌아가지 않으니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국영 공장에서 나와 장마당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김정은은 앞으로 장기 집권하려면 장마당을 통한 자본주의 경제 요소 확대를 막고 사회주의 계획 경제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자면 군수 공업을 줄이는 길밖에 없다.

현재 북한에서 돌아가고 있는 것은 군수 공장들뿐이다.

북한의 한 해 전기생산량이 200억-240억 킬로와트인데 한국의 4% 정도밖에 안 된다.

그것도 거의 80%가 군수 공업이 이용한다.

원인은 상용 무력 유지와 현대화에 필요한 특수강 생산과 탱크, 장사정포 등 상용 무기 생산 때문이다.

북한 강철로들은 대다수가 일제 때 만든 낡은 전기로써 특수강을 생산할 때 전기를 너무 많이 쓴다.

평양시의 경우 하루에 순시로 40만만 들어와도 일반 주민용 전기를 저녁 시간대에 8시간 보장 할 수 있는데 현재 순시로 10만 킬로와트도 보장하기 어렵다.

낡은 강철 공장 전기로가 순시로 40만 킬로와트를 쓰는데 군수용 강철 공장 전기로 하나만 멈추어 세워도 평양시에 하루 8시간 전기는 보장할 수 있는 예비가 나온다.

평양시 주민들은 하루 8시간만 전기가 와도 김정은 만세를 부를 것이다.

그러니 김정은으로서는 빨리 핵과 미사일을 실전 배치하고 현재 120만 무력유지에 필요한 막대한 군비를 민수용 경제로, 주민용으로 돌리는 것은 생사존망이 걸린 문제이다.

김정은이 2017년 신년사에서 1960년대의 북한으로 시간을 되돌려 놓겠으니 핵과 미사일을 완성할 때까지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주민들에게 호소한 것이 우연한 소리가 아니다.

5.2. 결국 핵과 미사일을 다 완성한 다음 한국과 미국에 대고자 이제는 동결에 들어가겠으니 동결 대 제재 해제, 군사 훈련 중지를 요구할 것이다.

만일 한국이 김정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터널에서 미사일 하나씩 꺼내어 줄 때까지 쏠 것이다.

일각에서는 김정은이 한국의 경제적 지원에 큰 기대를 걸고 있으니 경제적 인센티브를 크게 주면 비핵화로 갈 수 있다고 하는데 사실 김정은이 바로 보고 있는 것은 한국의 지원이 아니라 국제 제재 해제를 통해 국제 사회에 핵을 가진 정상 국가로 재진입하고 막대한 군비를 민수용으로 돌려 자력갱생의 방법으로 북한을 1960년대 시스템으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이러한 셈법 앞에서 우리가 동결 후 비핵화로 넘어가는 단계적 해법을 주장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만일 동결에서 비핵화로 넘어가지 못하고 주저앉으면 우리는 영원히 김정은의 핵 인질이 되는 것이다.

 

5.3. 그러니 김정은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할 때까지 끝까지 제재로 밀어붙이고 한편으로는 북한 내부에서 평화적인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도록 우리가 나서는 방도밖에 없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비선이든 공식이든 북남 대화 채널을 회복하고 북한에 핵과 미사일 정책을 고집하면 북한의 고립과 자멸만을 가져올 것이며 설사 북한이 군비를 축소하여 민수용으로 돌린다고 하여도 장기적 견지에서 북한은 영원히 낙후한 나라로 남아있게 될 것이라고 이해시켜 북한의 전략적 셈법을 바꾸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