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실상과 한국 대학생들의 사명

2017년 6월 숙명여대에서 한 특강

  1. 현 김정은 체제의 특징

1.1. 정통성과 명분 부족

1.1.1.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의 후계구조는 ‘상향식 후계구도’

북한은 이미 1970년대 초~1970년대 말 김정일을 김일성의 공식 후계자로 선정하면서 김씨 가문의 세습에 의한 수령 군사 독재체제를 완성했다.

그러나 당시 북한 노동당은 공산주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공산주의 이념과 배치되기 봉건주의로 퇴행하는 세습 주의를 당 정책으로 채택하면서 첫째, 한반도 분열이라는 특수성. 둘째, 공산주의 운동 내에서 수령이 서거하면 인차 수령의 업적을 거세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다는 (이전 소련 공산당 후르쇼브의 스탈린 공격과 등소평의 모택동 업적 재평가) 등을 이유로 수령의 핏줄이 이어받아야 한다는 ‘혈통론’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면 혈통론에 근거하여 누구인가가 문제였다.

당시 북한의 당 권력은 김일성의 동생인 중앙당 조직부장 김영주(7.4 남북 공동 성명의 창안자), 김일성의 부인인 김성애의 형제들에게 집중되어 있었고 군대는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들에게 쥐어져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김일성에게 김정일이라는 맏아들이 있었으나 지적 측면에서나 육체적으로 생긴 모습이나, 령도력에서 배다른 이복동생인 김평일에게 엘리트층의 시선이 쏠리고 있었다.

이러한 사태를 뒤집기 위해 김정일이 만들어낸 것이 ‘곁가지론’이며 김정일은 곁가지론에 기초하여 김영주, 김성애 형제들, 이복동생 김평일을 쳐내고 공식 후계자로 지명되었다.

* 곁가지론의 이론적 기초는 장자 우선주의 원칙인 유교 이론이다. 백성은 임금에게 충성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며 동생은 형님을 존경해야 한다는 유교적 논리를 바탕으로 한다.

결국 김정일을 후계자로 공식적으로 지명하는 데는 1960년대 중반부터 거의 10여 년이라는 장기간의 세월이 흘렀고 김정일은 결국 제힘으로 후계자까지 올라가는 ‘상향식 후계구조’ 수립 과정을 밟았다.

결국 1994년 김일성이 죽었을 때의 북한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김정일의 북한이었으며 김일성은 상징적인 존재로서 아무런 실권이 없었다.

김일성이 죽었을 때 일각에서 ‘북한 조기 붕괴론’이 지배적이었던 것은 이러한 북한의 내부 정치 흐름을 보지 못하고 김일성을 북한의 지도자로 착각한 것과 관련된다.

 

1.1.2. 김정은의 후계 구도는 임명식인 ‘하향식 구도’

 

2009년 초 김정일이 김정은을 후계자로 임명하기 전까지 김정은의 존재를 아는 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김정일에게 딸만 있는 줄 알았다.

2008년 말 뇌졸중으로 졸도하여 거의 한 달 동안 김정일이 의식을 잃고 몸을 가누지 못했다가 다시 소생한 후 김정일은 당시까지 숨겨놓았던 김정은을 공개하고 2010년 9월 당 제3차 대표자 대회를 통해 공식 후계자로 선포했다.

그런데 1년 후인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사망했다.

결국 김정은은 초고속 후계 임명 과정을 밟은 셈이다.

김정일은 북한에서 김일성의 맏아들로 아이 때부터 널리 알려져 있었고 소학교, 중학교, 김일성 종합대학, 1964년 북한 노동당 선전선동부 지도원으로 배치 등 과거사 경력이 명백하고 후계자로 공식 임명되기 전에 선전선동부 예술과를 지도하면서 북한에 널리 알려졌다.

1970년대 초에는 당 중앙위원회 조직비서로서 사실상 북한의 간부권(한국에서는 인사권)을 틀어쥐고 10년 동안 북한 지도부를 자기 사람으로 채워 넣었다.

비록 수령 독재체제에서 김일성의 결심이면 다 가능했으나 김정일은 그 나름대로 당의 지도자임명 적법절차를 거쳤다.

그러나 김정은은 북한 간부들에게 숨기고 있다가 불의에 일사천리로 후계자로 임명되고 김정일에 의해 북한 사회 전반에 후계자로 내리 먹인 ‘하향식 후계구조’이다.

 

1.1.3. 김정은의 불투명한 정체성

 

북한은 수령을 신 같은 존재로 만들어 놓고 수령의 신격화에 기초하여 유지 가능한 사회이다.

그러자면 김정은이란 어떤 사람인가?

아무리 주민들 세뇌용 교육이라고 하지만 북한식으로 표현하면 김정은의 혁명역사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김정은이 집권한 지 5년이 되어오지만, 아직도 김정은은 자기 나이, 자기 어머니, 자기와 할아버지 관계, 자기와 이복형 김정남, 친형 김정철 등 자기에 대해 밝히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김정은이 김정일의 장남이 아니라 세 번째 아들, 그의 어머니는 공식 부인이 아니라 첩, 할아버지인 김일성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자기의 경력도 밝히지 못하고 있다.

학교는 어디에 다녔는지, 동무들은 누가 있는지 마치도 달에서 내려온 사람 같다.

앞으로 북한을 40~50년을 더 이끌고 나가야 하겠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자기 정체를 숨기며 살아야 할지 그도 답답할 것이다.

그리고 김정일이 만들어 놓은 북한 노동당의 후계 구도 정책인 곁가지론과 자기의 후계자 선정에 대한 설명도 문제이다.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결국 김정일의 맏아들인 김정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달에서 내려와 생전 처음으로 만난 사람들과 함께 그것도 아슬아슬한 권력 투쟁 속에서 일해야 하는 심리적 불안감이 주변 간부들을 계속 처형하는 기본 원인이다.

 

2. 김정은의 핵과 미사일 질주의 원인

2.1. 북한 체제의 본질적 특성으로부터 핵과 미사일로 나가게 되어있다.

 

일부 사람들은 김정일 시대에 와서 핵 개발이 시작되고 본격적인 단계는 김정은 대에 와서 시작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견해이다.

사실 북한이 핵을 개발하기로 한 것은 1950년대 말이고 1960년대 초부터 이전 소련의 핵물리 연구소에 수많은 핵 과학자들을 보내 핵 개발의 과학 이론적 기초를 쌓았으며 1960년대 초에 벌써 실험용 핵 반응로를 건설했다.

왜 북한 체제는 꼭 핵과 미사일로 나가게 되어 있는가 ?

1945년 8.15 해방을 계기로 북한에 수립된 공산체제는 그 이념으로부터 남조선 해방과 공산화를 전략적 목표로 제기하고 있다.

공산주의는 이념상 민주주의를 허용하지 않고 있으며 한반도 전역에서 공산 혁명승리를 목적으로 존재하는 북한 공산체제는 그 승리를 보장하기 위한 방법을 끊임없이 고안해내는 과정 속에서만 존재가 가능하다.

결국 핵과 미사일 개발 과정 자체가 북한 체제의 공고화 과정인 것이다.

그러므로 한반도 전역에서의 적화통일을 위해서는 그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게 되어있다.

북한이 이야기하는 남북 연방제 통일 방안이나 우리 민족끼리 정신에 기초한 6.15 선언을 기본으로 하는 통일 방안은 다 위장 평화 공세이며 북한의 대남 적화통일 전략은 변한 적이 없다.

 

2.2. 북핵 개발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적인 측면

 

그러면 왜 적화통일을 한다면서 꼭 핵을 개발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북한의 핵 문제에 이야기할 때는 정치적인 측면과 물리적이고 군사적인 측면, 북한 내부 실정과 한국 내부 실정과 떼어 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2.2.1. 군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대남 4대 군사전략을 실현하는 방법은 이제는 핵무기밖에 없다.

북한 노동당은 1945년 10월 10일 창립되면서 4대 대남 군사전략을 채택했다.

1.선제기습 2.속전속결. 3. 정규전과 게릴라전 배합. 4.미국 개입 차단

 

  • 그러나 오늘의 북한 경제력으로는 이러한 군사전략을 달성할 수 없다.
  • 6.25 때 ‘애치슨 라인’ 때문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오판했다. 현 실정에서 미국 개입을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은 핵미사일밖에 없다.

 

2.2.2. 한국의 민주화와 경제 성장으로 인한 남북 격차가 북한을 핵 무장화로 떠밀었다.

 

민중을 대남 적화전략 실현의 동력으로 보았던 북한의 대남 전략이 한국 민주화와 경제적 성장으로 변했다.

분단 이후부터 1990년대 초 이전 소련 등 동구권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되기 전까지 북한의 대남 적화전략은 폭력혁명론에 기초했다.

즉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 농민, 대학생들을 혁명의 동력으로 간주하고 그들을 교양 육성하여 한국에서 군사 쿠데타나 민중 봉기 등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방법으로 자본주의 제도를 무너뜨린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공작원들을 한국에 파견하여 지하당 조직을 구축하고 한국 정부를 폭력적인 방법으로 전복시킬 혁명 역량 구축에 주력하였으며 한국에서 최고 통수권자를 제거하면 혁명이 성공할 수 있다고 보고 대통령 암살을 기도하기도 하였다.

특히 북한은 1980년의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북한 공산혁명의 폭력 투쟁의 일환으로 판단하고 한국에서 전두환 대통령만 제거하면 한국에 공산 정권에 수립될 수 있다는 전략적 오판으로부터 아웅 산 묘테로 사건까지 감행했다.

북한은 한국의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공산혁명의 서막으로 착각했다.

그러나 북한의 이러한 대남 전략은 사실상 오늘에 와서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되었다.

 

2.2.2.1. 무엇보다도 대남 혁명전략 실현의 추진 주체인 북한이 심각한 경제난과 식량난 등으로 국력이 쇠퇴한 반면에 한국은 획기적인 경제 발전과 민주화 실현 등으로 전체적인 국력이 강해졌다.

2.2.2.2. 이와 함께 동구권 사회주의가 붕괴되고 중국까지 개혁 개방 정책으로 나감과 동시에 미국은 초대강국이 되면서 국제 관계가 남한에 유리하게 변했다.

결국 북한은 남한 사회에 대한 평가와 혁명의 대상과 동력선정 문제에서 심각한 딜레마에 빠졌다.

1996년 연세대 한총련 사건을 계기로 지금까지 한국의 정치 운동에서 선두에 섰던 학생 운동은 뒤로 물러섰고 오늘 한국 대학생 운동은 종전의 정치 이슈로부터 문화와 학생 복지로, 운동과 개인의 삶을 조화시키는 방향으로 폭력으로부터 비폭력으로 변화되었다.

과연 오늘의 한국의 노동자, 농민, 청년 학생이 공산혁명의 주력군 동력으로 될 수 있을까요 ?

 

2.2.2.3. 북한은 한국의 민주화 투쟁이 결국 공산 혁명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오늘날 북한은 한국의 근로 인민 대중은커녕 대학생들과 노동자, 농민들을 혁명의 동력으로가 아니라 관리 통제해야 할 혁명의 독재 대상으로 보기 시작했다.

결국 한국에 비해 정치경제적 우세를 보장한 데 기초하여 한국에서 공산혁명을 일으킨다던 북한의 대남 전략은 결국 혁명의 근거지인 북한의 체제를 수호하는 ‘사회주의 수호전’으로 바뀌게 되었다.

 

2.2.3. 북한의 변화된 현실이 김정은으로 하여금 핵미사일 만이 북한 체제의 붕괴 과정을 멈추어 세우고 장기 세습통치를 유지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2.2.3.1. 현재 김정은 시대에 이르러 북한 엘리트들은 이념적인 딜레마에 빠져있다.

 

지금까지의 김일성과 김정일이 내놓은 공산혁명 이론은 매우 그럴듯하고 실현 가능성이 있어 보였으며 이러한 신념은 엘리트층의 응집력으로 김씨 가문과의 운명 공동체라는 연대의식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자기 고모부, 이복형도 서슴없이 죽이고 있는 김씨 가문 내의 유혈 투쟁을 보면서 과연 우리가 이런 꼴을 보자고 지금까지 투쟁했는가 자문하고 있다.

2.2.3.2. 다른 하나는 물질 소득 분야에서의 불평등이다.

물론 북한에서 기득권층이 다른 계층에 의하여 상당한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득권층의 시야에서 보면 나라의 모든 물질적 부는 오직 김씨 가문 만의 영달을 보장하는 데 복종 되고 있다.

 

2.2.3.3. 점점 자본주의 경제 체제로 떠밀리어 가고 있는 북한의 현실은 김정은으로 하여금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2.2.3.4. 한국 문화 콘텐츠의 확산과 시장 형성화이다.

 

2.3. 인도주의 간섭을 허용한 국제법의 변화이다.

 

3. 한국 대학생들의 사명은

3.1. 우선 통일을 득실 관계에서 보지 말고 생사 운명이 걸려 있는 문제로 간주해야 한다.

지금 내가 대학에 나가서 강의해보면 통일을 반대하는 프로 수가 지지하는 프로 수보다 많다.

많은 학생들은 통일이 되면 정부가 남북 격차를 줄이기 위해 많은 예산을 북한 개발과 북한 주민들을 위한 복지에 돌릴 것이므로 한국 내에서 취업난, 실업난이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지금 김정은은 한국 자체를 없애버리려 하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빨리 통일하여 항구적인 평화를 마련하는 것은 더는 미룰 수 없는 문제이다.

결국 북한에서 김씨 왕조를 들어내고 통일을 실현하는 것은 한국 대학생들의 생사 운명과 관련되는 문제이다.

3.2. 통일은 한국에 엄청난 경제적 혜택을 안겨줄 것이다.

북한의 통일이 남한에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고 엄청난 통일비용 때문에 한국 경제가 망가질 수 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여러분은 왜 한국의 고속도로들이 힘들게 산에 터널을 뚫어 힘들게 건설되었는지 생각해 보았는가 ?

바로 땅값이 비싸기 때문에 평지로 도로를 내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에는 토지에 대한 사적 소유가 없다.

한 개 국가로서 토지를 국가가 소유하게 된다는 것은 엄청난 경제적 혜택을 안겨준다.

그리고 북한에는 교육되고 질서 있는 눅은 노동력이 있다.

지금 한국에 100만 이상의 외국인이 들어와 한국인들이 하지 않는 제일 힘들고 험한 일을 하고 있다.

많은 한국 기업들이 비싼 땅값과 노동력 때문에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그러나 통일이 되어 2천만이 넘는 눅은 노동력, 중국과 러시아와 육지로 연결되는 거대 시장이 생긴다면 한국 기업들과 세계적인 기업들이 북한으로 몰려올 것이다.

통일이 되면 당연히 취업률은 더욱 올라갈 것이다.

지금 서울 명동 거리에 가보면 중국 관광객들로 차있다.

지금은 중국 관광객들이 배나 비행기로 한국에 오지만 앞으로 육로를 이용하면 아마 한 해에 수천만의 중국 관광객이 몰려올 것이고 그 경제적 효과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북한의 무진장한 자연 부원은 한국 경제를 또다시 도약시킬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통일이 되면 영원히 안보 리스크에서 해방된다는 것이다.

3.3. 한국 대학생들은 응당 통일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한국의 통일 흐름을 주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지금 통일 문제가 우리 민족의 지상의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통일 문제 논의는 주로 정부나 일부 학자들에 국한되어 있다.

지난시기 한국 대학생들은 한국의 민주화 투쟁을 주도했으며 한국을 도약시키는 기본 동력이었다.

이제는 한국 대학생들이 통일 운동의 주도 세력으로 되어야 한다.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에서 라는 1960년대 대학생들의 구호가 다시 울려 나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