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 숙청 사건이 북한 사회에 미친 영향

2017년 1월 29일 한국 인권 관계자들과 나눈 담화

 

  1. 장성택 숙청 배경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이 뜻밖에 죽고 김정은이 집권하였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가 외국에서 공부한 전적도 있고 하여 북한의 경제 형편도 개선하고 인권 상황도 개선될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김정은은 2012년 초에 접어들면서 전국적으로 김일성, 김정일 동상 건립 사업부터 시작하였으며 점차 자기의 눈에 거슬리는 사람들과 집단들에 대한 처형을 시작하였다.

2013년 8월에는 북한에서 유명한 ‘은하수 악단 처형’사건이 있었다.

2013년 11월 말경부터 북한 내에서 당 행정부 부부장들인 장수길과 이룡하가 총살되었다는 말이 나돌았으며 드디여 2013년 12월 8일 북한 노동당 중앙 위원회 정치국 확대 회의에서는 김정은의 참가하에 장성택 숙청을 결정하였다.

북한은 4일 후인 12월 12일 진행된 국가 안전보위부 특별 군사 재판에 따라 장성택을 사형에 처하기로 결정하고 즉시 사형을 집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세계에 보도하였다.

당시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로 일하고 있던 나에게 있어서 이 사건은 대단히 충격적이었다.

물론 북한 중앙통신이 장성택의 죄명을 ‘정권 야욕에 미쳐 분별을 잃고 날뛰던 나머지 군대를 동원하면 정변을 성사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어리석게 타산하였다’고 날조하였지만 누가 보아도 김정은의 피비린내 나는 대대적인 숙청이라는 것 명백하였다.

물론 김정은은 장성택을 숙청하기에 앞서 2012년 이영호 전 북한군 총참모장를숙청하였다.

그러나 장성택 숙청 사건은 좀 달랐다. 당 정치국 확대 회의에서 결정하였고 4일 만에 장성택을 처형하였을 뿐 아니라 처형 판결문을 보아도 대대적인 숙청이 예견된다는 것이 명백하였다.

2. 장성택 숙청이 북한 외교가에 미친 파급

 

장성택 숙청 사업은 북한 내에서는 물론 해외에 근무하는 많은 외교관들까지 피해가 다가왔다.

장성택의 매부였던 쿠바 주재 북한 대사 전영진,장성택의 조카였던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 대사 장용철, 스웨덴 주재 북한 대사 박광철, 유네스코 주재 북한 대표 윤영일, 부대표 홍용이 북한으로 소환되었다.

2013년 12월 북한은 해외 공관들에 전보로 반당반혁명분자 16명의 명단을 내려보내면서 그들의 사진들과 작품들을 빠른 시일안에 없애버리라고 지시하였다.

당시 북한이 재외 공관들에 공식 내려보낸 반당반혁명분자들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장성택, 리룡하, 장수길, 박춘홍, 최금철, 김동이, 량청송, 한룡걸, 길경남, 정성일, 최병히, 안종환, 조원범, 리철호, 김경수, 전응렬”

이들중 리룡하, 장수길, 량청송 등은 장성택이 처형되기 전에 처형되었고 나머지는 장성택의 처형과 함께 처형된 인물들이다.

 

3. 장성택 사건이 북한 사회 전반에 준 충격

 

장성택 사건이 나를 비롯한 북한 사람들에 큰 충격을 준 것은 비단 김정은의 무자비한 숙청때문만은 아니다.

장성택의 비리를 폭로하는 판결문을 통해 북한 사람들은 그동안 베일에 쌓여있던 김씨 가문의 추악한 모습을 확인했던 것이다.

판결문에는 장성택이 여러 여성들과 불륜 관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해외에 나가면 수백만 불씩 도박장에서 탕진하였고 마약도 사용했다고 되어있다.

사실 이것은 장성택의 비리이기도 하였지만 김정일의 비리인 것이다.

장성택 사건을 통하여 북한 주민들은 지금까지 북한에서 중앙당으로부터 도 당, 군 당에 이르기까지 모든 당 기관들에 5과라는 것을 내오고 전국적으로 예쁜 처녀들을 다 모집하여 비밀 장소를 데리고 가는 내막을 알게 되었다.

결국 김일성과 김정일은 공산주의와 프로레타리아 독재라는 외피를 쓰고 북한에 세계에도 없는 노예 사회를 건설하였던 것이다.

나는 이러한 북한 정권을 위하여 복무한다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웠다.

 

4. 장성택 숙청시 함께 처형된 사람들 중에서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나는 장성택 처형 전에 먼저 처형된 북한 노동당 행정부 리룡하의 동생 리룡남과 국제 관계 대학 동창이다.

리룡하가 처형될 당시 리룡남은 북한 노동당 자강도 도당 위원회 선전 비서였다.

리룡하의 처형과 함꼐 동생 리룡남의 가족도 정치법 수용소로 끌리워 갔다.

리룡하의 사돈은 전 스웨덴 주재 북한 대사였던 리희철이다.

리희철은 리룡하 처형시 북한 외무성 정세 자료 국장이였으나 리룡하 처형 후 외무성에서 인민대학습당으로 추방되였다.

그의 아들이 리룡하의 사위였는데 장인이 처형되면서 안해(아내), 어린 아들과 함께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 갔다.

박춘홍의 사돈은 전 스웨덴 주재 북한 대사였던 박광철이다.

박광철은 2013년 12월 초 북한으로 끌려가 외무성에서 추방되어 현재 평양시 서성구역 인민 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다.

박광철의 딸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북한 영화 ‘한 녀학생의 수기’의 주역배우 박미향이다.

이 영화는 국제 영화제에서도 상영되었다.

박미향은 시아버지가 처형된 후 남편과 어린 아들과 함꼐 수용소로 끌려 갔다.

(북한 영화 한 여학생의 수기의 주역배우 박미향)

 

량청송의 처남이 전 유네스코 주재 북한 부대표 홍영이었다.

홍영은 2013년 12월 초에 북한으로 끌려 갔는데 그가 중국 베이징 수도 비행장에서 북한으로 끌리워가는 모습이 한국 언론에 포착되어 한국 언론도 그가 북한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크게 보도했다.

량청송은 총살되고 가족은 다 수용소로 끌려 갔으며 홍영은 외무성에서 추방되어 지금 평양시 주변 구역 인민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다.

전 북한 노동당 국제부 유럽 담당 과장 리응길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이태리어 통역으로서 수십 년 동안 김일성과 김정일의 수발을 들었다.

유트뷰에서 그의 사진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장성택과도 가까운 관계였다. 그와 그의 부인, 아들과 며느리 손자도 수용소를 끌려갔다.

그의 며느리는 현재 북한 외무성 미국 담당 부상 한성렬의 딸이다. 한성렬의 부인이 북한에서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인 림춘추 부주석의 딸이여서 다행히 한성렬의 딸만 수용소에서 풀려나와 평양으로 돌아왔다.

리응길의 사위는 김강림으로서 2014년 4월까지 북한 외무성 영국 담당 과장으로 일하다가 장인과 가족이 탄광으로 끌려간 후 과장직에서 해임되여 다행히 외무성 정세 자료국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전 북한 관광 총국 부총국장 조성규는 (1965년 생) 장성택의 누이, 전 쿠바 주재 북한 대사 전영진의 딸 전은영(1968년생 평양 외국어 학원 평양 외국어 대학 영어과 졸업)의 남편이다.

장성택의 숙청과 함께 온 가족이 수용소로 끌려갔다.

조성규와 나는 중국베이징외국어대학 동창이다.

장성택의 조카인 전혜영은 장성택의 누이의 딸이로서 전 쿠바주재 북한대사 전영진의 맏딸이다.

그는 황장엽 선생의 맏며느리었다. 황장엽 선생의 가족이 수용소로 끌려갈 때 전혜영만 장성택이 구원해주었다. 그후 재가했는데 이번에는 결국 장성택의 조카라는 이유로 수용소로 끌리워 갔다.

전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 대사 장용철의 부인은 북한에서 유명한 배우로서 북한 영화 ‘홍길동’ 녀 주연배우이다. 장용철의 가족도 수용소를 끌리워갔다.

 

5. 장성택의 처형 이유

 

김정은의 장성택 처형은 수십 년 동안 쌓여온 장성택에 대한 증오의 분수령이라고 생각한다.

김정일이 살아있을 때 김경희와 장성택이 고용희의 존재를 상당히 부담스러워 했다는 말이 나돌았다. 고용희와 그의 자녀들이 김일성 앞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것은 김정일이 숨겨놓은 것과도 관련되지만 김경희가 완강히 반대하였다는 소리도 있다. 김정은은 집권 5년차가 되는 아직도 김일성과 찍은 사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아마 고용희와 김경희 사이의 관계도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일반적으로 시누이와 관계가 좋은 여성이 없다.

김정은은 자기 생모가 살아 있을 때 김경희와 장성택을 미워하는 모습을 계속 보았을 것이고 필경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 장성택을 처형하였을 것이다.

 

6. 장성택 사건 여파로 숙청된 당사자와 가족 수

 

장성택 처형시 당 행정부 부부장 및 과장급 이상 15명이 총살했다.

행정부만 보아도 400여 명, 54부만 보아도 300명 정도 되며 보안성 9국도 200명은 된다.

이외 공병총국 등을 비롯하여 북한의 많은 기관 간부들이 숙청되었다.

외무성의 경우 수용소로 끌려 간 가족이 박광철의 딸, 윤영일의 딸, 김강림의 장인, 김정애 고방산초대소 소장 사위와 딸, 한성렬 부상 딸, 리희철 정세 자료국 국장 아들, 전 스웨덴 대사 전영진 가족, 전 말레이시아 대사 장용철 가족 등이다.

처형되지는 않았지만 직접 수용소를 끌려 간 사람이 10명을 넘는다.

외무성 직원 1천 명 중 0.1%가 장성택 처형으로 피해를 본 셈인데 북한 인구 2천만으로보면 2만 명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못해도 1만 명은 수용소나 탄광으로 끌려갔거나 지방으로 추방되었다.

장성택 처형 사건은 북한에서 1990년대 말에 있었던 심화조 사건보다 그 폭이 더 넓은 사건이다.

이번 사건에 대하여 전세계에 널리 알리고 이 사건 하나를 가지고 심의해야 한다.

특히 많은 북한 외교관들이 숙청되었고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아직 평양시에 살아있는 실정에서 국제 형사 재판소가 이번 사건을 별도로 다루어 김정은을 재판에 회부한다면 파급 효과가 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