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17일 국회에서 주최한 ‘북한의 실상과 통일한국을 위한 한국 정치인의 사명’이라는 주제의 세미나에서 한 특강

국회의원 여러분이 현 김정은 정권을 통해 본 북한의 실상에 대해서 문의하였으므로

1. 김정은 정권의 취약점

2. 북한 사회를 회생시키기 위한 김정은의 정책

3. 이에 대한 한국의 대응

4. 한국 정치인들의 사명 순서로 이야기 하겠다.

  1. 김정일 정권의 취약점

1.1. 정통성과 명분이 부족한 김정은의 ‘백두 혈통’

북한 체제는 공산주의와 유교의 성리학 개념이 결합된 특수한 사회제도이다.

성리학에서 기본은 정통성과 명분이다.

따라서 모든 것이 막무가내로 진행되는 것 같지만 사실 북한도 정통성과 명분을 중시한다.

김정일과 김정은은 다 김일성이 이미 만들어 놓은 북한 체제를 이어 받았다는 점에서는 공통성과 있으나 그것을 넘겨받은 후계구도 과정 즉 세습 이행 과정에서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1.1.1. 김정일의 ‘상향식 후계 구도’와 김정은의 ‘하향식 후계 구도’의 차이점과 향후 북한 체제에 미칠 영향

1.1.1.1. 김정일의 ‘상향식 후계 구조’

김정일은 김일성으로부터 공식 후계자로 지명되기 전까지 1960년대 후반기부터 1970년대 후반기까지 거의 10년 동안 후계자로 되기 위해 당과 김씨 가문 내부를 자기 지지세력으로 꾸리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 기간 삼촌인 김영주와 아버지 김일성의 후처 김성애와 그의 형제들, 자기의 이복형제들을 북한의 주요 직책들에서 내몰았다.

그러므로 김일성이 김정일을 자기 후계자로 공식 지명할 때 북한 노동당은 김정일이 10년 동안 당 중앙위원회에서 일하면서 후계자로서의 능력을 검증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김정일은 혈통적으로도 아버지는 ‘빨치산 대장, 어머니는 항일의 녀성 영웅’이라는 정체성을 내들었다.

김정일이 삼촌인 김영주나 이복동생인 김평일을 후계 구도에서 내몰 수 있는 결정적인 요인은 김일성의 장남이라는 점이었다.

북한 사회에 뿌리 깊이 남아 있는 장자 우선 원칙이 김정일이 후계자로 될 수 있는 정통성과 명분을 만들어 주었으며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들과 가문 내의 지지를 쉽게 받을 수 있는 요인이었다.

결국 김정일의 후계 구도는 ‘상향식 후계 구도’였다.

김일성이 1994년에 죽었을 때 세계는 북한이 지도자를 잃었으므로 얼마 가지 못 할 것이라고 추정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북한을 잘 모르고 한 예측이었다.

내가 국제 관계 대학에 입학한 것이 1980년 4월인데 그때 벌써 북한의 지도자는 김정일이었으며 김일성은 상징적인 존재에 불과했다.

1.1.1.2. 김정은의 ‘하향식 후계 구조’

그러나 김정은의 후계 구도는 김정일이 2008년 가을 뇌혈전으로 의식을 잃었다가 회복한 후 2009년 초부터 후계자로 내세우면서 일사천리로 진행된 ‘하향식 후계 구도’이다.

물론 김정일이 당의 정책에 ‘혁명은 대를 이어 계속되며 혁명의 승리는 후계자에 의하여 담보된다’고 박아넣었으나 정통성과 명분을 중시하는 북한 노동당 내에서 이렇게 일사천리로 후계자 문제를 처리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1.1.1.2.1. 김정은의 존재를 전혀 몰랐던 북한 주민들과 북한 간부들

김정일이 측근들에게 숨겨놓았던 김정철과 김정은을 소개한 것은 2008년 말경이다.

2009년 초부터 ‘대장 동지’라는 말이 나돌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발걸음’이란 노래를 보급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장 동지라고만 했을 뿐 이름도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슬며시 이름이 김정은이라는 것이 공개되고 2010년 9월 당 대표자 회의에서 공식 후계자가 되었음이 공개되었다.

2년 동안에 일사천리로 진행된 셈이다.

그런데 김정일과는 달리 김정은은 집권 5년차가 지나도록 아직도 자기의 생일과 학력, 자기 어머니 등 가족 내력을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향후 북한 사회의 불안한 요소가 깔려 있는 것이다.

1.1.1.2.2. 집권 5년차가 되도록 아직도 자기 생모를 공개하지 못하고 있는 김정은, 이름과 묘주가 없는 묘비

지금 한국 언론이 김정은의 생모의 이름을 고용희, 혹은 고영희로 엇갈리게 보도하고 있다.

김정은 생모의 이름은 나도 모르겠다.

2011년 김정일이 죽은 후부터 북한 당국은 중앙 기관의 간부들에게 김정은의 생모 고용희의 생일과 사망일에 대성산에 있는 ‘선군 어머님’의 묘를 참배시키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묘비에 이름이 없이 ‘선군 어머님’이라고만 되어있었다.

지금은 묘비에 이름을 넣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2012년 가을까지는 이름이 없었다.

내가 탈북하기 전인 2016년 3월 북한은 노동당 7차 대회를 앞두고 전당적으로 김정은의 혁명 역사를 학습시켰다.

그런데 해외에 내보낸 김정은의 혁명 활동 강연 제강에도 김정은의 어머니의 이름이 없었다.

이것은 김정은이 주민들에게 자기의 정통성과 후계자로서의 명분을 백두 혈통이라고 내세우고 있으나 자기 어머니가 김정일의 여러 여자들 중의 한명이며 자기 형제들도 김정일이 만들어놓은 여러 가족들의 일부라는 사실이 커다란 심리적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정은의 존재는 지어 김일성 가문 내에서도 알려지지 않았었다.

1980년대 말까지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김정일의 공식 부인인 김영숙이 딸들을 데리고 설 명절이면 만경대 가문에 인사를 다녔다고 한다.

북한 주민들 속에서 김정은과 가족에 대한 궁금증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다른 나라 사람들과 다른 특이한 문화가 있다.

우리는 친구들을 새로 사귈 때 흔히 나이, 고향, 부모, 학연 등에 대해서 알고 싶어한다.

그중에서도 나이가 가장 중요하다. 나이에 따라 존댓말을 써야 하는지 반말을 써야 하는지 갈라지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항상 자기 어머니가 김정일의 공식 부인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간부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하는 심리적 불안감에 휩싸여있다.

1.1.1.2.3. 다시 들어간 북한 기록 영화 ‘선군 조선의 어머님’

김정은은 2012년 ‘선군 조선의 어머님’라는 제목의 자기 어머니에 대한 선전용 기록 영화를 만들어 극소수의 간부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 영화를 본 간부들 속에서 영화가 나갔다가 북한 사회에 커다란 동요가 일어날 수 있다고 제기하여 그 영화가 공개되지 못했다.

그런데 영화가 USB로 나돌아 한동안 영화를 본 사람들이 자수하라고 당 내적으로 회의까지 벌어지고 중앙 방송위원회에서 여러 명이 처형되었다.

그런데 그 영화가 해외로 빠져 나와 지금은 유튜브에까지 올라 있다.

북한 사람들에게 김정은에게 김정남이라는 형이 있으며 김정일에게 성혜림, 김영숙, 고영희 등 여러 여성과 낳은 자식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겠는가 ?

나는 앞으로 김정은이 자기 이복 형 김정남을 가만 두겠는지도 의심스럽다.

(결국 이 강연이 있은 지 한 달도 안 된 2017년 2월 13일 김정남은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 국제 공항에서 암살당했다.)

1.1.2. 장성택 처형이 북한 주민들에게 가져다준 충격

김정은 정권의 취약점 중에서도 가장 큰 취약점은 김정은이 자기 고모부 장성택을 공개 숙청한 것이다.

이것은 앞으로 김정은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것이다.

북한이 갑자기 장성택의 숙청 소식을 노동 신문을 통하여 주민들에게 공개한 후 3일 동안 북한 주민들의 장성택에 대한 이야기로 장마당이 돌아가지 않는 정도였다.

가장 큰 충격은 김일성의 사위인 장성택에게 여자가 많았다는 대목이다.

북한 사람들은 김일성의 딸을 데리고 살면서 무엇이 부족하여 여성들을 많이 데리고 부화방탕한 생활을 하였는가하고 격분해하였다.

지어 장성택의 자녀들이 한 버스가 된다는 말도 나돌았다.

영화 ‘줄기는 뿌리에서 내린다’에서 나오는 여배우를 비롯하여 여러 연예인들이 체포되어 없어졌다.

노력 영웅이던 오봉산 관리소 소장도 체포되었다.

돌아가는 말에 의하면 장성택이 데리고 놀다 죽여버린 여성들을 관리소 소장이 화장했다는 것이다.

만경대 구역의 금성고등중학교 교장도 체포되었다.

사람들 속에서 중앙당 5과 대상이라고 데려간 처녀들이 결국 장성택의 노리개가 되었다는 소문이 돌면서 고운 딸을 가진 부모들은 딸이 5과 대상에 뽑힐까봐 걱정하였다.

장성택 처형으로 사람들은 썩고 부패한 ‘백두 혈통’내부를 들여다 보았던 것이다.

1.2. 무너지고 있는 주민 통제 시스템

북한은 정치조직 생활, 외부 정보 유입차단, 이동 통제, 끊임없는 세뇌 교육으로 유지되고 있는 사회이다.

이제부터 이러한 기능들이 어떻게 약화되고 있는가를 실례를 들어가면서 이야기 하겠다.

1.2.1. 정치조직 생활 기능 약화

북한의 정치조직 생활에서 기본은 자기 비판과 호상 비판이다.

그러나 지방은 이러한 기능이 약화된 지 오래고 지금은 평양시에서 외무성과 같은 기관 내에서도 호상 비판에 참가하는 사람이 없다.

2009년부터 2013년 초까지 내가 외무성 유럽국에서 부문당 비서를 하였는데 호상 비판에 참가하는 사람이 없어서 토요일 하루종일 당 회의 기록부를 정리해야 하는 정도였다.

내가 외무성에 입직했던 1988년, 그때에는 분기 당 생활총화 때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몰랐다.

모두 정열적으로 호상 비판에 참가했다.

1992년 김정일이 당 조직지도부를 내세워 외무성 1부상이였던 강석주를 전면 검토하였다.

강석주가 비판 무대에 올랐을 때는 어떤 여성들은 울면서 호상 비판에 참가하여 강석주를 단죄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호상 비판에 참가하지 않아 분기당 생활 총화가 있기 하루 전 당비서가 모든 부상, 국장, 부국장들을 방에 사전에 불러 호상 비판을 조직한다.

저마다 당 위원회 부원에게 담배도 가져다 바치고 돈도 바치면서 자기를 호상 비판 명단에서 빼달라고 사업한다.

외무성 분기당 생활 총화를 당시 중앙당 조직 지도부 부부장이였던 최휘가 지도했는데 회의 도중 휴식 시간마다 당 위원회에서 중앙당 부부장이 참가했는데 졸지 말라고 계속 경고하는 정도이다.

강연회 때에는 다 졸고 있어 당비서도 모르는척하고 강연 자료를 내리 읽는다.

지금 북한은 회의에서 사람들이 조는 문제를 퇴치하겠다고 난리이다.

2016년 5월 당 7차 대회 때 김정은이 주석단이 앉아 있는데 당 대표들이 자꾸 졸아 회의실 온도를 14도로 낮추고 냉풍을 내리 쏘아 수많은 사람들이 감기에 걸렸다.

여러분이 언론들의 보도를 통해 7차 대회 기간 평양시 철도국 정치부장과 국장을 반당분자로 몰아 당 대표직을 박탈하였으며 그중 1명은 자살했다는 사실을 들었을 것이다.

북한의 최고 간부들이 모인 당 제7차 대회가 이런 형편이니 지방이야 더 말해 뭘하겠는가.

1.2.2. 외부 정보유입 차단 기능 약화

김정은이 올라가 불순 록화물과의 전쟁을 선언했다. 한류를 차단하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단속반 ‘109호’라는 상설 조직도 창설했다.

그러나 이러한 ‘109호’의 단속 사업도 점차 돈벌이 수단으로 전략했다.

이제는 한국 영화를 집에서 보다가 단속되었을 경우에는 몇 천 달러, 손전화에서 한국 게임이나 책, 핸드폰 문자에서 한국말이 발견되었을 경우 얼마 이렇게 가격까지 붙여있다.

대학생들인 경우 6개월에 한번씩 학부형 총회를 열고 불순 록화물 단속 정형을 총화하고 있는 정도이나 근절되지 않고 있다.

젊은 층 속에서는 ‘자기야, 오빠, 거야’ 등 한국말이 너무 많이 돌고 있어 통제불능이다.

북한 사람치고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속에는 한국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

북한이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바로 마약과 한류이다.

1.3. 무너지고있는 엘리트층의 충성심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김정일 때와 김정은 시대에 와서 달라진 것이 무엇이냐, 황장엽 선생도 한국에 와서 북한이 인차 무너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북한 체제는 아직도 존재하며 김정은 체제가 오히려 더 굳건해지고 있는 것 같다고 한다.

과연 북한 체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변하고 있는 것일까?

김정일 때의 ‘고난의 행군’은 북한 체제가 한국 전쟁 후 처음으로 겪는 경제 위기였으며 당시 주민들은 전쟁의 잿더미를 헤치고 나왔으므로 이정도 난관도 곧 극복하리라고 생각했다.

김정일도 사회주의는 과학이다, 1990년대의 난관이 북한 노동당의 정책 실패가 아니라 온 동구권이 겪는 난관이라고 하면서 텔레비전 등을 통해 경제적 혼란에 빠져있는 이전 소련과 동유럽의 실상을 계속 내보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 다른 동구권 나라들은 다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고 제 궤도에 올랐다.

20년 동안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오직 북한뿐이다.

지난시기 북한이 원조를 주던 베트남과 라오스, 캄보디아, 앙골라 등에 오히려 북한 인력들이 돈을 벌려고 파견되는 정도이다.

이제야 북한 간부들은 우리가 정말 이러자고 혁명을 했는가 하는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노예 생활이 앞으로 30~40년 지속된다고 생각하니 끔찍한 것이다.

김정은의 계속 되는 공포 정치에 간부들 속에서는 ‘태양의 가까이에 가면 타죽고 너무 멀어지면 얼어 죽는다’고 하면서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려고 한다.

장성택 처형 시 수많은 간부들이 처형되었는데 사실 처형 이유도 매우 모호하다.

북한 노동당 역사상 당 행정부라는 노동당의 한 개 부서를 통째로 도륙낸 것은 처음이다.

간부들은 이제는 북한에 미래가 없다고 본다.

모두 은밀히 달러를 모으고 있다.

간부 자식 치고 외무성과 같은 기관에 오려는 사람이 없다.

간부들도 일단 권력이 생기면 자식들을 다 외화벌이 기관에 보내 돈을 벌게 한다.

간부들의 마음속에 당이 아니라 달러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1.4. 정책 부재

김정은이 올라간 후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변화를 갈망하였다.

그러나 집권 5년차를 겪고 보니 김정은도 김일성, 김정일의 후광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알게 되었다.

김정은도 현재의 당 정책이 현실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자기가 정책을 흔들면 자기도 끝장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금 북한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원시적인 퇴행적 자본주의 사회이라고 볼 수 있다.

1.4.1. 전시성 건설의 실패

북한에 제일 필요한 것은 에네르기(에너지), 식량, 철도 운수 등과 같은 기초 산업과 사회 간접 건설이다.

그러나 김정은은 올라가자마자 문수 물놀이장, 개선유희 공원, 류경원, 릉라도 유원지, 마식령 스키장과 같은 전시성 공사만 벌였다.

이렇게 유희장은 많이 건설했으나 사실 일반 주민들은 한 번 가보는 데 그치고 있다.

오히려 이런 대상이 들어서면 해당 지역 주민들은 자기 지역 전기를 다 끌어간다고 아우성을 친다.

1.4.2. 경제 정책의 실패

지금 북한 경제는 국가가 운영하는 군수산업과 중공업, 화학공업, 철도운수와 같은 사회주의 경제와 장마당을 통한 자본주의 경제 형태가 혼합되어 존재한다.

그러나 현 경제 구조에 부합되는 정책과 법률적 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않다.

북한은 김정은이라는 존재를 신처럼 만들고 신격화에 의하여 움직이는 사회이다.

북한의 현존 경제법들은 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로작에 성분화되어 있는 것들이다.

김정은이 로작으로 발표하지 않은 법들은 아무런 효력이 없다.

한 가지 예를 들겠다.

외국 무역선들이 드나드는 항구에서 연체료를 받는 문제이다.

항에서 연체료를 외화로 받겠다고 김정은으로부터 방침을 받았다.

그러나 외무성에서 외무성이 끌어들이는 협조 물자는 인도주의 물자이므로 연체료를 받으면 안된다고 방침을 받아 인도주의 물자는 외화 연체료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군수공업부에서 군수 물자들에 연체료를 부과하면 안된다고 방침을 받아 면제되었고 39호실도 저들도 연체료를 못 물겠다고 방침을 받았다. 이렇게 저마다 방침을 받으니 새로운 법이 나온 지 한 달 만에 없어지는 셈이다.

이러한 정책 부재는 사람들 속에 정책은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으니 달러만 있으면 된다는 심리를 발생시켰다.

1.4.3. 군대까지도 돈벌이에 미쳤다.

지금 군대는 ‘사회주의 건설도 조국 수호도 다 우리가 맡자’는 구호를 들고 먹을알 있는 대상들은 하나씩 빼앗아가고 있다.

평양시의 만 달러짜리 아빠트들은 대부분 다 군대가 지어 돈주들에게 팔고 있다.

군단장, 사단장들은 훈련보다 돈벌이에 더 미쳐 있다.

지금 북한군은 패망 직전의 이전 장개석 국민당 군대나 남부 베트남 군대와 유사하다.

북한의 ‘메뚜기 시장도 진드기 시장’으로 변했다.

지금 내 말을 들으면 당장 북한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기 위한 김정은의 대응도 진화하고 있다.

  1.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김정은의 대응

2.1. 김일성 시대를 모방

김정은은 지금 자기 할아버지 김일성을 모방하려고 한다.

김정은도 지금 사람들이 김일성 시대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2017년 새해 신년사에서 김정은이 ‘세상에 부럼 없어라’라는 노래를 부르던 시대가 역사의 한 순간이 아니라 오늘의 현실이 되도록 하겠다고 맹약했다.

21세기인 지금에 와서 50년 전으로 시간을 리세트하겠다는 것이다.

30대의 김정은이 옷차림과 몸가짐에서 60대의 김일성을 모방하고 있다.

김일성이 환갑이던 1970년대의 김일성을 흉내내고 있다.

국가 기구 체계도 김일성 시대처럼 점차 고치고 있다.

그러나 실제 내부 체재는 김정일 시대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2.2. 공포 선행 통치 강화

김정은대에 와서 북한의 공포 통치는 ‘공포 선행 통치’로 바뀌었다.

내가 통일부 기자 간담회에서 북한에서 1호행사시 주민들의 신분증 검열 방식과 행사장 입장 규정이 달라졌다는 것을 이야기 했다.

외무성 등 광장주변 청사에 폭동 진압 무력에 사전에 들어가 있다.

처형 방법도 자동 보총이 아니라 4신 고사총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문제는 처형 이유가 황당한 것이다.

2016년 3월 북한 노동당 군사위원회, 당 중앙위원회 확대회의에서 북한군 총참모장이였던 이영길 등 8명이 체포되었는데 그 중 이영길만 살아나왔다.

이영길 사건은 매우 황당했던 사건이다.

은하수 악단 숙청 사건은 김정은의 공포 정치의 일면을 보여주는 또다른 실례이다.

2.3. 간부 통제 강화

김정은은 올라가지 마자 ‘삼수 갑산에서 떨어지는 소리도 듣게 해달라’고 중앙당 조직부에 지시했다.

2012년 초 전당적으로 회의하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대책이 마련되었다.

외무성 국장급 이상은 하루 전날 자기의 다음날 시간별 움직임을 당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

2013년 하반기에 북한에서 수산상이 임명된 지 며칠만에 다시 교체되는 사건이 있었다.

지나친 충성심이 그를 수산상으로 임명된 지 며칠 만에 파면을 맞게 했다.

간부들에 대한 도청이 더욱 강화되어 숨도 쉬지 못하고 있다

2.4. 핵 경제 병진 로선 통한 핵 질주

많은 사람들이 김정은이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핵이 아니라 한국과의 병존과 외국으로부터의 투자를 받아 북한 경제를 회생시켜 위대한 지도자로 역사에 남으려 했겠는데 왜 자멸의 길을 택했는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김정은은 핵이 있어야 자멸하지 않으며 핵만이 김씨 가문의 영원한 집권을 담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2012년 김정은은 지도자로서의 첫 사업으로 전연지대 부대들을 시찰했다.

김정은이 본 북한군 현실은 정말 암담하였다. 이런 군대를 가지고 지금까지 조국을 통일한다고 외쳐온 북한군 장령들은 김정은 앞에서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결국 김정은 핵무기만이 김씨 가문을 지켜줄 수 있다는 것을 신념으로 삼게 되였다.

할아버지, 아버지로부터 꾸준히 개발해 온 핵무기를 김정은이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2.5. 제재 극복 위한 대응 진화

제재의 코너에 몰린 김정은은 제제를 극복하기 위한 각이한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2.5.1. 그 중 하나가 인력수출을 늘이는 것이다.

지금 중국과 러시아의 인건비 상승은 조직화되고 절제된 북한 인력을 대대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김정은은 인력 수출 확대를 위해 해외에 파견되는 근로자들의 간부 사업 기준을 4촌으로 낮추어 인력 원천을 확보할 수 있게 해주었다.

2.5.2. 금융 제재망을 피하기 위해 북한인들을 그 나라 국적으로 바꾸어 위장 진입시키기 위한 대책도 취하고 있다.

2.5.3. 관광 확대도 꾀하며 제재 항목에 들어가 있지 않는 해산물 수출 등 새로운 항목들을 꾸준히 개발하고 있다.

2.5.4. 밀수도 늘어날 것이다.

그러면 김정은 정권에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겠는가 ?

  1. 한국의 대응

나는 북한 김정은 정권에 대한 한국의 대응 순위를 꼽으라면 다음과 같이 꼽겠다.

  • 외부 정보 유입을 통한 민중 봉기 유도
  • 국제 공조를 통한 대북 제재 압박 강화
  • 북한 인권 개선 압박을 통한 인권 개선
  • 원칙있는 대북 민간지원 통해 북한 주민들의 대남 적대감 해소

개성 공단을 재개하는 경우에도 현금 지원은 더는 안 된다.

식량 지원도 반드시 현장 분배 입회를 동반하는 국제 기준에 부합되는 지원을 주어야 한다.

3.1. 비핵화 목표 대화 진행, 핵보유국 지위 원천 차단

김정은의 핵 동결 대 군사 훈련 중지, 제재 해제 요구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한 동안 북한의 핵을 머리에 이고 살 것을 감수해야 한다.

북핵 문제의 해결은 오직 김정은 정권의 소멸에 있다.

  1. 한국 정치인의 역할

4.1. 북한에 대한 개념부터 똑바로 정리해 달라

북한은 공산 체제가 아니라 노예 사회이다.

공산이란 말을 쓰면 북한에 대한 접근법도 좌와 우, 보수와 진보로 갈라진다.

공산주의 이념에 프로레타리아 독재라는 개념이 있으며 김일성, 김정일도 이 프로레타리아 독재이념으로 북한 독재 체제를 합리화했다.

지난시기 많은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이러한 이념으로부터 김일성, 김정일의 독재 체제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공산주의 이념에 세습 통치는 없다.

북한은 공화국도 아니며 공산 체제는 더욱 아니다.

북핵 문제 해결이나 한반도 통일 문제를 해결하는데서 북한에서 누구를 주권자로 보겠는가 하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지금의 대북 정책이 응당한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북한 정권을 문제 해결을 주권자로 보았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을 문제 해결의 주권자로 보았을 때 핵 문제나 한반도 통일 문제가 풀릴 수 있다.

4.2. 대한민국을 예측 가능한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

지금 외부에서 볼 때 북한이 어떤 도발을 하면 한국이 어떻게 대응 할 것이라든가, 앞으로 정권이 바뀌면 한국이 어떤 대북 정책을 쓸지 알 수 없다.

북한은 오히려 한국 민주주의에 2가지 약점. 즉, 정권이 바뀌면 정책이 바뀌고 사람이 바뀐다는 점을 이용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4.3. 김정은 정권을 붕괴시킬 수 있는 법률적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드론기로 물자나 현금을 뿌릴 수 있게 법률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북한에로 외부 정보를 유입시키기 위한 법도 제정해야 한다.